박노해·이윤택씨등 시인 32명 시와 산문엮어 책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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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벌교중학교 1학년 때. 여학교 퀸으로 꼽히던 글 잘 쓰고 눈빛이 슬퍼보이던 그 애를 짝사랑했는데.부끄러움을 많이 타 편지로만 무지 몸살을 앓았는데. 어느날 그 애를 양보하라는 선배들에 의해 공원으로 끌려가 맞는 바람에 아직까지 머리에 그 짝사랑의 흉터가 창피하게 남았는데.지금도 누군가 나에게 힘으로 돈으로 내 마음을 바꾸라 하면 문득 25년전 그 사랑싸움이 생각난다."

이렇게 아련한 첫사랑을 고백하는 시인 박노해씨. 91년 사노맹사건으로 구속된 후 올해 광복절특사로 석방된 박씨가 출소 후 처음으로 첫사랑 얘기를 시로 풀어준다.

시인이자 연극연출가 이윤택씨는 청년시절 부산의 낡은 음악다방에서 여자를 만났다.

교대를 졸업하고 기약없이 발령을 기다리던 그녀도 그처럼 음악속에서 집을 짓고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그들은 인사를 나눴고 그는 몇 트럭분의 말들을 그녀에게 쏟아냈다.

그렇게 서로 마음이 통해갔다.

하지만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하는 그녀. 언젠가 주어질 교사라는 직책 탓이였을까. 이런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대학도 못 다니고 심각하기만 한 문학청년을 더이상 감당할 수 없었나 보다.

어느날 문득 한번의 키스와 함께 '사랑해' 란 낮은 목소리를 내뱉고 그녀는 사라져 버린다.

1년후 편지가 왔고 이미 그때 날아온 그녀의 편지는 한편의 시였다고 이씨는 회상한다.

박노해.이윤택씨를 비롯 안도현.김용택씨 등 시인 32명의 첫사랑 얘기들을 시와 산문으로 엮은 '사랑의 첫 느낌 그 설레임으로 살고 싶다' 가 나왔다 (동인刊) .통학버스 안에서 혹은 감나무 아래서 나눈 애틋한 첫사랑에서 이루어 질 수 없는 불륜의 첫사랑까지. 쑥스러운 줄도 모르고 낱낱이 고백하고 있는 이 시인들은 아마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가 보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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