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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이용원 ‘30년 단골’ 있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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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순·박홍배·김교식씨(왼쪽부터)는 경력 30여 년의 동갑내기 이용사다. 이용원이 미용실에 밀린지 오래지만 그들에게 20, 30년 된 단골이 많아 외롭지않다. [사진= 조영회 기자]

40,50대 남자라면 대부분 동네 이발관의 추억을 갖고 있다. 어릴 적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가던 곳이다. 이발관 주인아저씨는 난생 처음 만나는 가장 가까운 어른이었다. 손님들은 이곳에서 온갖 소식을 듣는다. 이발관은 동네 사랑방이었다.

“명절이 되면 이발관 문을 빠끔히 열고 들어오는 반가운 손님들이 있다. 외지에서 살다 명절쇠러 온 정든 옛 고객이다. 이젠 나이 들어 자신이 이발관 첫 출입할 때만한 아들을 데려 오기도 한다.”

황재순(52)씨는 ‘가위’를 잡은지 38년이다. 28세 때 문을 연 천안 봉명동 천고사거리 ‘모모이용원’을 여태껏 지키고 있다. 25년 세월의 탓인지 이발관은 초라해졌지만, 이 곳을 밑천으로 결혼도 했고 딸 둘, 아들 하나를 얻어 대학·중학교에 보내고 있다.

이발관은 사양길에 접어든지 오래다. 남자아이들이 아빠가 아닌 엄마따라 미용원을 출입하게 됐고, 커서도 미용원으로 가는 세태를 나무랄 순 없다. 이발관 호칭은 1980년대 ‘이용원’으로 바뀌었다. 세련된 느낌을 주기 위함이었다.

“나이 든 남자(이용사)들만 있으니까 이용원에 젊은이들이 오지 않는다. 이젠 이용원도 뭔가 혁신을 해야 한다.” 천안 쌍용동 하이렉스스파 내 이용원을 운영하는 박홍배(52)씨. 그가 이용 기술을 가르친 조카(25)는 최근 성남 분당에서 개업했다. “조카 시대에는 많이 달라질거다. 이·미용의 경계가 허물어지던가, 예약제 이용으로 바뀌어 ‘고급 고객’ 위주 영업이 될 수도 있고….”

박씨는 황씨와 같은 나이인 15살 때부터 이용원에서 일했다. 둘은 천안 남산 부근의 이용원에서 일하면서 만났다. “주인 심부름으로 약국에 염색약을 사러갔다, 물 길러 갔다 서로 얼굴을 익혔다.”

그 시절의 또 다른 친구가 다가동 일봉초교 입구에 개업 중인 ‘영규이용원’ 김교식(52)씨. 세 명은 모두 57년생 닭띠다. 김씨는 13살때부터 시작했다. 명동거리 끄트머리 작은재빼기 부근 이발관이었다. 당시 천안극장이 가까이 있어 이들 ‘10대 예비 이용사’ 세 명은 이용원이 노는 날은 이 극장에서 시간을 때웠다.

모두 20대 초반 이용원을 직접 차린 경험이 있다. 김씨는 “당시 이발 기술이 큰 기술이었다. 돈은 잘 벌었지만 어린 나이라 헤프게 써 모으진 못했다. 다시 남 밑으로 들어가 기술과 경영을 더 배워야 했다” 고 회상했다.  

손잡이 머리빗과 가위(上), 면도용 비누거품. 이용원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오래된 고객들=성무용 천안시장은 박씨의 10여 년 고객이다. 그 외 시의원·도의원들도 찾는다. 가장 귀한 고객은 80세가 넘은 한 할아버지. 박씨가 20여 년간 개업했던 성거에 산다. 매번 쌍용동까지 버스를 두세 번 갈아타며 온다. 박씨가 머리할때 정성을 쏟지않을 수 없는 이유다.

황씨에게 나이가 네 살 밑인 20년 단골이 있다. 부친을 따라 어릴 적부터 황씨에게 머리를 깎다 황씨가 개업하자 그곳을 알아내 계속 오는 경우다. 미국 이민갔다 돌아 온 한 손님은 수소문 끝에 김씨 개업 이용원을 찾아 10년째 다니고 있다.

김씨는 “젊은 고객들도 많다”고 했다. 그는 “이용원이 신유행 헤어 스타일을 못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고객에 맞는 머리를 만들어주니까 20년, 30년 단골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후배 양성과 봉사=후배 양성에 있어선 박씨가 독보적. 82년 전국기능대회 1위 경력을 지닌 그는 남동생 2명을 모두 이용업에 이끌어 둘 다 전국대회 최고상을 타게 했다. 그 중 박성배(45)씨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속 청와대 이용사에 임명돼 퇴임 때까지 근무했다.

딸(21)도 이·미용 자격증을 모두 따고 미용실 근무 중이다. 후일 박씨는 딸과 새로운 형태의 이·미용원을 차리려 한다. 충남 유일한 ‘이용장(匠)’인 박씨는 7월 초 ‘명장’에 도전, 심사를 받고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세 명 모두 “요즘 이용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드물다”며 서운해 했다. 이들은 이발 봉사에 적극적이다. 장애인·독거노인·소년가장 등 어려운 이웃 무료 이발에 항상 나서고 있다. 도지사·시장·국회의원 등에게 받은 감사패가 즐비하다.

이용 요금은 지역마다 조금 다르다. 이발은 면도와 함께 1만2000~1만5000원, 염색까지 할 경우 2만4000~3만원.

문의 모모이용원 573-3682, 하이렉스이용원 592-2888, 영규이용원 574-5546.

글 = 조한필 기자
사진 = 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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