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계좌추적 크게 늘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누군가 당신의 예금계좌를 뒤지고 있다.

올들어 은행.증권사 등 금융기관 고객들의 계좌를 당국에서 추적 조사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계좌추적은 대부분 수사나 세금징수 등의 용도로 이뤄지고 있으나 무리한 조사가 적지 않고, 추적사실이 계좌 주인에게 제대로 통보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법률상 보호받아야 할 예금자의 비밀이 쉽게 새나가 개인재산권 침해의 우려를 낳고, 금융기관들은 급증하는 계좌추적 요구를 처리하느라 몸살을 앓고 있다.

1일 본지가 금융기관들을 대상으로 계좌추적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형 시중은행인 A은행의 경우 지난 한햇동안 6만9천1백3명이었던 계좌추적 대상자가 올들어서는 10월말까지만 9만5백34명으로 늘어나면서 전년 실적을 30% 이상 웃돌고 있다.

특히 3분기에만 총 4만7백85명의 계좌를 뒤져 지난해 같은 기간 (1만8천5백67명)에 비해 두배 이상 늘어났다.

B은행도 본점에서만 처리한 계좌추적 요청 건수가 올들어 10월말까지 7백28건으로 지난해 실적 (3백68건) 을 이미 두배 가까이 웃돌고 있다.

C은행 본점에서도 올들어 9월말까지 총 3백74건을 처리, 지난해 실적 (2백93건) 을 27% 이상 상회했다.

이 은행들의 경우도 법원영장이나 정부기관의 공문을 붙여 계좌추적을 요청하는 경우 한건에 많게는 수천명의 계좌 조사를 요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계좌추적 대상자수는 A은행처럼 수만명 단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A은행 관계자는 "세무당국의 조사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공직자 재산조사 등에다 정권교체 과정에서 사정차원의 수요까지 겹쳐 계좌추적이 크게 늘었다" 고 말했다.

특히 사정 (司正) 및 수사 목적에 활용되는 법원의 영장에 의한 계좌추적은 최근들어 급증세를 보인다.

C은행 전산센터에 접수된 영장 첨부 계좌추적 요청 건수는 올들어 10월말까지 총 2백40건으로 지난해 연간실적 (1백22건) 을 두배 이상 웃돌았다.

이 가운데 60%가 넘는 1백52건은 여야간에 사정 공방이 뜨거웠던 7월 이후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D은행과 E은행 등도 올들어 법원영장이 첨부된 계좌추적을 각각 2백12건, 2백92건씩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나마 법원영장이 붙는 경우는 5~10%선이며, 나머지는 감사원.국세청.공직자윤리위.금융감독기관 등이 개별법에 따라 영장없이 해당 기관장의 공문만으로 계좌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한건의 영장으로 수천명의 계좌를 뒤지고 기관마다 별도의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계좌추적의 불법.남용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지적됐다.

계좌추적이 이렇게 급증하고 있으나 계좌주인에게 추적 사실이 통보되는 것은 극히 일부에 그치고 있다.

C은행의 경우 본점에서 처리한 3백74건 가운데 30%선인 1백15건만 본인에게 통보된 것으로 나타났다.

B은행 관계자도 "계좌추적 사실이 본인에게 통보되는 비율은 40%에 훨씬 못미친다" 고 말했다.

현행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법률은 계좌추적 사실을 원칙적으로 계좌주인에게 통보해야 하나 공직자윤리법.감사원법 등 특정 법률에 의한 조사, 수사상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있을 경우에 통보를 생략하거나 유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획취재팀 손병수.홍승일.채인택 기자

제보전화 02-751-5222∼7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