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이며 언어학자.사학자였던 헐버트 박사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다. 1886년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처음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일평생을 바쳤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직후 그는 고종을 보호하기 위해 황제의 침전에서 불침번을 섰다. 1905년 을사조약이 맺어진 뒤엔 한국의 자주독립을 주장하기 위해 고종의 밀서를 갖고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을 찾아갔다. 하지만 이미 일본과 아시아 분할에 합의한 당시 미국 정부 관리들은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보내도록 건의한 사람도 헐버트 박사다. 그는 이준.이상설 열사 등보다 먼저 헤이그에 도착해 '회의 시보'에 한국 대표단의 호소문을 싣게 했다. 이 사건 이후 한국을 떠나게 된 헐버트 박사는 서재필.이승만 박사 등과 함께 미국에서 조선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일본인은 다혈질의 민족이다. 군사력이나 야수적인 폭력이 아니면 그것이 능력이라고 존경하려 들지 않는 민족이다. 중국인은 미신을 좋아하면서도 비교적 냉담한 성격을 갖고 있다. 상술(商術) 면에서는 중국인을 따를 만한 민족이 이 세상에 없다. 한국인은 두 나라의 중간 성격을 갖고 있으며 합리적인 이상주의자다. 헐버트 박사는 1906년에 지은 '대한제국 멸망사'(신복룡 옮김, 평민사)에서 이같이 평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악의에 찬 외세에 의해 시달림만 받을 뿐, 옳은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는 한 국가와 민족의 독자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쓰인 사랑의 열매"라고 밝혔다. 그 누구보다 한국을 이해하고 사랑했던 헐버트 박사의 55주기 추모식이 오늘 열린다.
이세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