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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의 쾌감에 후들후들, 그런데 2% 부족한 건...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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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대에 선 선수의 시야 앞에 까마득히 뻗은 능선 아래 빼곡히 들어선 관중이 보인다. 롤러코스터처럼 무서운 속도로 밑으로 질주하다 위로 솟아오르며 점프! 몸과 스키를 바짝 붙이고 쭉쭉 날아오른다. 그저 한 마리의 새. 영화 ‘국가대표’의 핵심 이미지는 몇 번 반복되지만 그때마다 박수라도 보내야 할 것 같은 쾌감을 안긴다. 실제로 몇몇 어린이 관객들은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그건 단지 스키 점프가 가지고 있는 비상의 근원적인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첨단 장비 캠캣과 멀티 카메라를 동원해 잡아낸 뒤 다채롭게 편집한 경기장면은 활강의 스피드와 비상의 아득함을 고스란히 관객의 마음에 전한다. 공중에 뜬 선수의 시점에서 저 아래의 관객을 한 프레임에 담아낸 꽉 찬 화면의 감동, 대회 현장과 흡사한 관중의 리액션이 주는 생생함 역시 세심하게 배치되어 연출됐다. 경기 기록을 흘려 보내는 CG며, 감정을 증폭시키는 음악, 오랜 시간을 캐스터와 해설자의 내레이션만으로 이끄는 TV중계 장면 역시 세련됐다.

‘이 정도면 할리우드 수준’이라고 할 만한 건 고급스러운 화면뿐만 아니다. 경기의 하이라이트 부분, 어딘가 모자랐던 후보선수가 형을 대신해 날아오를 때 누구나 손쉽게 그의 죽음이나 부상을 떠올린다. 그러나 영화는 과잉을 자제하는 이야기의 세련됨마저 과시한다. 입양아였던 주인공(하정우)이 생모와 부둥켜안는 신파의 엔딩 같은 것도 없다. ‘오 브라더스’와 ‘미녀는 괴로워’에서 탁월한 코믹드라마 감각을 보였던 김용화 감독은 곳곳에 뿌려놓은 코미디와 유머로 감동 드라마의 무게를 무겁지 않은 톤으로 유지시킨다.

맨땅에 물을 뿌려가며 연습해야 할 정도로 악조건. 자동차 위에 서서 스피드 적응 훈련을 하고 드럼통 위에서 균형잡기 훈련을 하는 자연스러운 피지컬 코미디는 눈을 즐겁게 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오락영화로서 어떻게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유쾌하게 하며, 어느 때 감정을 끓어오르게 하고, 그러면서도 진지함에 대한 부담을 덜고 안정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

치밀하게 짜놓은 영화의 전략은 스포츠 영화로서의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달려간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캐릭터와 그들의 감정마저 지나치게 전략과 목표에 따라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이 영화의 약점이다. 한국말을 너무 잘하는 입양아 하정우는 진짜 엄마를 찾고 싶어하는 건지 궁금해지고, 대표 코치 성동일은 왜 굳이 선수들을 데리고 고생을 감수하는지, 진짜 스키는 타보기라도 한 건지 궁금해지고, 그의 딸은 옥장판을 꼭 팔아야 하는 건지, 날라리 대표선수를 진짜 사랑하는 건지 의심이 들게 된다.

실제의 인물을 만난다는 느낌보다는 각각의 역할을 그저 ‘연기’하는 것을 보고 있다는 느낌만 받게 되며 이로 인해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과 공감이 힘들어진다. 대표선수들 각자는 웃고 울고 의지를 불태우고 시련을 뛰어넘는데, 그 절절함이 와닿기보다는 그래야 하니까 그런다 싶은 느낌이 더 든다. ‘실화’를 앞세운 영화 치고는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이윤정 객원기자 filmp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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