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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ㆍ바람ㆍ빗물의 고마움, 건물에 담는 게 생태건축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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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 14면

파격적인 디자인의 '친환경 건축'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켄 양(61ㆍ사진) 박사를 8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중앙SUNDAY가 단독으로 만났다. 1948년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150년 전통의 영국 런던 건축학교(AA 스쿨)를 거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생태 개념의 건축 설계'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30여 년간 건축가로 활동하며 일본 도쿄-나라 타워(1994), 싱가포르 국립도서관(2005) 등 세계 주요 도시에 10여 개의 고층 건물을 설계했다. 현재 런던에서 건축사무실을 운영하며, 영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비숍스게이트 타워(288m)의 설계에도 참여하고 있다. 양 박사의 친환경 건축은 영국 BBC와 일본 NHK 방송에서도 소개됐다.

세계적 친환경 건축가 켄 양 박사 인터뷰

서울건축인회의(SA·의장 이종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초청으로 방한한 그는 10일 오전 11시 서울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에서 특별 강연을 할 예정이다.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무료로 강연을 들을 수 있다. SA는 1998년부터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여름 워크숍 서울건축학교(교장 최문규 연세대 교수, 기획 하태석 아이아크 공동대표)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의 주제는 '자연과의 협업: 건축에 의한 기후행동'이다. SA는 같은 주제의 국제디자인공모전도 개최하며, 공모전 참여 작품은 28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된다. 이번 행사는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와 서울시 등이 후원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친환경 건축’이란 어떤 것인가.
“오랫동안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다. 도시나 고층 건물이 지금처럼 자연과 단절된 것은 역사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건축가니까 건축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단절을 극복하고 연결을 복원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친환경 건축’ 또는 ‘생태 건축’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인간과 자연의 통합과 연결이다.”

-태생적으로 인공 구조물일 수밖에 없는 건축물이 어떻게 자연과 통합할 수 있나.
“자연은 인간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안겨 준다. 햇빛과 빗물과 바람의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식물은 햇빛을 받아 우리에게 아름다운 경치를 제공하면서 공기를 맑게 하고 빗물을 정화한다. 이런 자연의 요소들을 최대한 건물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에너지 사용에서도 자연조건을 최대한 활용한다.”

싱가포르의 EDITT 타워는 켄 양의 생태 디자인 원리에 더해 빗물 활용시스템이 적극 사용됐다. 지붕과 파사드에 설치된 빗물 수집 장치가 외관을 역동적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예컨대 햇빛은 어떻게 이용할 수 있나.
“빛의 반사하는 성질을 활용한 ‘햇빛 선반(Light Shelf)’과 ‘햇빛 파이프(Light Pipe)’를 고안했다. 일반 고층 건물에선 유리창 주변에만 햇빛이 조금 들어오고, 실내 나머지 부분은 어두침침하다. 낮에도 전등을 환하게 켜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해결책은 햇빛을 반사시켜 실내 깊숙이 끌어들이는 것이다. 햇빛 파이프의 경우 유리창에서 12m나 안쪽으로 들어간 곳도 별도의 조명 없이 400럭스 정도로 밝힐 수 있다. 햇빛의 장점은 단지 조명에 필요한 전기료를 아끼는 것뿐이 아니다. 자연 채광으로 사람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하면 건강과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빗물을 활용하는 방법도 소개해 달라.
“현대 도시는 빗물을 신속히 강이나 바다로 배수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빗물이 땅 밑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만큼 지하수는 고갈 상태에 놓여 있다. 그래서 건물 주변에 우물을 팠다.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빗물을 땅 밑으로 스며들게 하는 용도다. 또 건물 지붕과 바닥 쪽에 빗물 탱크를 만들어 최대한 많은 빗물을 저장하도록 했다. 건물 안에 설치한 정수 장치를 거치면 빗물을 생활용수로 재활용할 수 있다.”

-현대 건물은 여름철 냉방과 겨울철 난방에 에너지 손실이 많은데.
“한창 덥거나 추운 계절에 냉난방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친환경 설계로 온도를 잘 조절하면 여름ㆍ겨울을 짧게 하고, 쾌적한 봄ㆍ가을 날씨를 더 오래 즐길 수 있다. 이중창과 비슷한 형태의 ‘더블 스킨(Double Skin)’을 개발했다. 벽면의 아래쪽으로 들어온 공기가 이중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환풍기를 거쳐 실내로 공급되는 방식이다. 계절별로 조절할 수 있는 햇빛 가리개도 있다. 여름에는 햇빛을 막아주지만 겨울에는 햇빛이 그대로 통과하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 햇빛이나 빗물ㆍ바람 같은 자연조건을 부분적으로 활용하는 건물도 늘고 있다.
“일단 환경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10년 전만 해도 ‘생태 건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 일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그러나 기존 건물과 별 차이가 없으면서 부수적으로 친환경적 장치를 갖다 붙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건물 전체가 유기적으로 자연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적 기후 특성과 지형까지 충분히 고려한 건축 설계가 필수적이다.”

-고층 건물에 ‘녹색 마천루(Green Sky-scraper)’란 개념을 도입했다던데.
“전통적인 고층 건물은 주위 환경을 무시하고 오직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다. 앞서 말했듯이 자연과 통합한 건물을 추구한 것이 ‘녹색 마천루’다. 식물을 생각해 보자. 흔히 건물 주변의 조경이나 장식품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층마다 정원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식물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였다. 담쟁이 덩굴이 담을 타고 오르듯, 바닥에 머물러 있던 식물이 건물과 일체가 되어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것이 ‘수직적 조경(Vertical Landscaping)’이다. 다양한 식물이 있으면 보기에 좋을 뿐 아니라 냉각ㆍ방열 효과, 빗물 저장 등 장점이 무수히 많다.”

-수직적 조경 외에 ‘하늘 위의 도시(City-in-the-Sky)’란 개념도 만들었다고 들었다.
“흔히 건물은 사무실이나 주거용의 한두 가지 용도로만 쓰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무실ㆍ주택ㆍ상점ㆍ카페ㆍ공원 등을 한 건물에 섞어서 집어넣었다. 이렇게 평면으로 넓게 퍼져 있던 도시적 요소를 한데 모아 고층 건물에 수직적으로 배치한 것이 ‘하늘 위의 도시’란 개념이다. 도시의 다른 부분과 고층 건물의 통합을 위한 것이다.”

-전에도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나. 서울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세어 보진 않았지만 서울 방문은 10번이 넘는 것 같다. 서울은 매우 현대적이고 발전된 도시지만 ‘녹색 인프라’는 상당히 부족해 보인다. 환경을 기준으로 세계 주요 도시의 순서를 매긴다면 서울은 아마 중간보다 아래쪽에 위치할 것이다. 내 사무실이 있는 런던도 서울과 비슷한 정도로 환경이 좋지 않다.”

-서울은 최근 여러 군데에서 10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을 추진하고 있다. 어떻게 보나.
“초고층 건물 자체가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주변 환경을 얼마나 고려하고, 조화를 이루느냐다. 특히 초고층 건물의 위치는 반드시 대중교통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지점이어야 한다. 초고층 건물은 특성상 유동 인구가 굉장히 많을 텐데, 그 사람들이 모두 승용차를 갖고 다니면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다. 초고층 빌딩의 아래쪽에 환승센터를 만든다면 많은 사람이 차를 놔두고 대중교통으로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친환경 건물이 좋은 것은 알겠는데, 건축비가 비싸게 들지 않나.
“단순 건축비만 따질 문제가 아니다. 친환경 건물은 조명이나 냉난방 유지비가 훨씬 적게 든다. 이런 비용까지 고려하면 친환경 건물의 건축비가 꼭 비싸다고 할 수 없다. 친환경 이미지를 통한 홍보 효과 등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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