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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자연, 야심찬 공공 프로젝트...하지만 되살아난 유원지의 기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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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 31면

1.안양천에 설치된 벨기에 조각가 호노레도의 ‘물고기의 눈물이 호수로 떨어지다’. 시민들이 분수 주변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2.공원 입구에 세워진 ‘1평 타워’. 파우스티노가 한국의 건축 기본 단위가 한 평인 것에 착안해 설계한 건물이다. .3.디자인·건축·조경·도시개발 전문그룹인 MVRDV가 해발 91m 산 정상에 세운 전망대. 나선형의 건물 언덕을 따라 오르게 되면 타워 정상에 이른다. 4.미국 건축가 아콘치의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 보행자들은 뱀처럼 구부러진 튜브를 통해 주차장과 야외무대를 오고 갈 수 있다. 신동연 기자

일요일인 8월 2일, 안양예술공원에 들어섰다. 머릿속으로 국내외의 명망 있는 작가와 건축가들의 작품이 강가와 숲 속에 놓여 있는 이미지를 그리고 있었다. 공원에 발을 디딘 순간 한적하고 사색적이던 사진 속 예술공원에 대한 기대가 단숨에 사라졌다. 마침 휴일을 맞아 안양천에 물놀이 나온 시민, 등산객이 겹쳐 공원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골짜기를 따라 물가는 물가대로, 둑 위의 차로와 보행로는 그곳대로 차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사색이 머무는 공간 안양예술공원

지도에 따르면 예술공원은 골짜기를 따라 환영, 호기심, 향연, 예술, 정원 등 10개 주제별로 작품을 배치하는 공간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인파를 헤치고 입구 주차장에 높게 솟은 포르투갈 작가 파우스티노의 1평 타워에 올랐다. 1평의 방들이 수직으로 이어지면서 예술공원 전체를 미리 내려다볼 수 있었다. 1평의 공간감이 새롭다. 4년이 지난 안내판이며, 내부의 마감재가 낡아 작품과 낡은 건조물 사이의 경계에 놓인 듯했다.

예술과 오락이 뒤섞여
초입에 위치한 포르투갈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설계하고 그의 이름을 따 이름 붙인 전시관은 사진으로 접했던 대로 훌륭한 공간이다. 둥근 천장의 공간이 무심한 듯 툭툭 잘라져서 이곳저곳으로 가지 뻗은 식물처럼 산의 끝자락에 자연스러운 형상으로 나지막이 위치해 있다. 하지만 어린이체험교실 천막들의 뾰족한 돔이 나지막한 건물의 둥근 지붕 앞에 줄지어 놓여 초입의 풍경이 왠지 부조화스럽다.

이 건물이 아름다운 것은 건물 자체만이 아니다. 그 안팎을 둘러싼 땅의 여유 있는 모양과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이 있어 아름다운 것이다. 조성 당시에 알바로 시자홀은 예술공원 전체의 구심역할을 하리라는 예상 아래 설계되고 지어졌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강을 따라 상부에 5층 내외의 근린생활 건물이 들어섰고, 대규모의 물놀이 위락시설까지 지어졌다.

현재의 알바로 시자홀은 그 풍경과 어울리지도, 독자적인 아우라를 가질 넉넉한 주변공간도 없이 장소의 구심점으로서 힘을 잃은 형상이다. 필자와 공원탐방길을 함께한 사진작가 진효숙씨는 안양이 고향이자 거주민이다. 그녀도 2005년 조성 직후에 와보고 처음 오는데, 강에 면한 5층 내외의 근린생활 건물들은 대부분 그 이후 지어진 것이라며 변화에 놀라워했다.

공원에 영구히 설치된 52점의 작품을 찾아 피서인파와 뒤섞이며 걸었다. 음식점과 술집의 간판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벤치(이자오 호소에, 김재광)이거나 간판(테루야 유켄)이거나, 혹은 정자(나빈 라완차이쿨)인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일은 흥미롭기도 했고 여러 생각이 교차하기도 했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천변의 둑에 설치된 작가 최정화씨의 ‘돌꽃’은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알록달록한 수영복, 튜브의 색깔들과 어우러져 묘한 정취를 자아낸다. 비토 아콘치의 ‘선으로 된 나무 위의 집’은 떠 있는 터널구조의 산책로다. 아마 작가가 기대한 바는 아니겠지만, 터널을 따라 걸으면 그늘을 찾아 그 아래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대화가 뚫려 있는 바닥을 통해 터널로 모여 옆에서 말하는 듯 전해졌다.

숲길에 다다르면 걷고 쉬는 즐거움 있어
우리 외에도 두서너 팀이 사진기를 메고 예술공원의 지도를 들고 작품들을 찾아 걷고 있었다. 그들이나 우리나 새로운 시설들에 밀려난 탓인지, 숲으로 이어지는 길은 찾기가 어려웠다. 강가에서 숲으로 오름에 따라 급격하게 사람의 수가 줄면서 고즈넉한 숲에 놓인 정원, 쉼, 정토 등의 주제군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비로소 작품을 통해 걷고 쉬어가는 즐거움이 느껴졌다. 작품이 설치된 가장 높은 곳에는 네덜란드 건축가 엠브이알디브이의 작품인 안양전망대가 있어, 산이 솟은 모양의 원형길을 따라올라 안양과 예술공원을 다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오르는 길에 거쳐 왔던 숲과 건물이 들어선 골짜기를 봤다. 그곳에서 분명 쉽게 만나지 못하는 훌륭한 작가의 작품들을 보았다. 그런데도 그곳을 ‘예술공원’이라 부를 수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공공예술로서 설치된 작업들은 시민들과 거리를 갖기보다 만져지고 사용되고 섞이길 바랐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 건축가 겐쿠 구마의 ‘종이뱀’ 철구조물에 자리를 펴고 평상으로 쓰거나, 이탈리아 작가 안드레아 브란치의 발랄한 ‘소풍벤치’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의 풍경은 그 의도에 부합하는 것일 게다. 또한 쇠락했던 옛 유원지가 다시 시민이 활발하게 쓰는 여가 공간이 되었다는 것도 긍정적인 결과다.

하지만 공공예술을 이용해 공원을 새로운 이야기와 문화의 장소로 만들 생각이었다면 아쉬운 점이 많다. 지금의 풍경은 문화와 예술의 산책로가 아니다. 문화와 오락·위락문화가 뒤섞인 풍경이다. 안양예술공원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살려가려면 공공예술자원과 자연환경, 인공적인 휴식공간이 어우러지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계획과 관리가 필요하다.

요즘 그 어느 때보다 공공공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시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 장소에 공공예술·공공디자인을 접목하려는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풍요한 삶을 제공한다는 것이 명분이다. 하지만 때때로 시민의 행복한 삶의 무대가 되는 장소를 만들어 간다는 목적을 잊고 단순한 시각적 환기로 홍보효과만을 극대화하려는 경우도 자주 눈에 띈다.

한 장소를 만드는 것은 멋진 청사진이 아닌 지속하는 과정 자체라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공공공간의 공공예술과 공공디자인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어야 한다. 관리의 용이성, 재료의 지속성, 안전, 환경과의 유연한 조화, 다양한 사용자를 고려해야 한다. 또 문화적인 삶을 자극하고, 일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참 어렵고도 야심 찬 도전이다.

예술공원과 되살아난 유원지의 기억 사이에서 안양예술공원은 아직도 진화 중이고 풍부한 가능성이 있는 장소다. 정의야 어찌 됐든 이곳은 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져 휴양과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 자연의 풍요로움을 지속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장소로 가꾸어지길 바란다.


안양예술공원은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삼성산과 관악산이 만나는 골짜기 일대.
-2005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시작, 같은 해 73명의 국내외 예술가 작품 설치(52점은 영구 설치).
-2007년 평촌 신도시에 야요이 구사마, 게리웹, 양혜규, 이미경 작가 작품 전시(36점 영구 설치).
-2010년(예정) 도시 전체공간을 공공예술·도시학·사회문화학적 관점에서 시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공공예술프로젝트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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