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영화사 백두대간 ‘씨네큐브’ 손 떼는 사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21면

한국 예술영화의 상징이었던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건물 지하 ‘씨네큐브’. 극장 내 오징어·팝콘과 음료 반입을 금지하고,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기 전까지 실내 조명을 켜지 않는 등 고급 관람문화를 선도한 것으로도 유명했던 곳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앞으로 질 좋은 예술영화를 만나기가 어려워질 것같다. 2000년 개관부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타인의 취향’ ‘포르노그래픽 어페어’ 등 예술영화 150여 편을 수입해 씨네큐브를 운영해왔던 영화사 ‘백두대간’(대표 이광모)이 개관 10주년을 1년 앞두고 손을 떼기로 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사유는 임대료 없이 장소를 제공해왔던 건물주 흥국생명(태광그룹 계열) 측의 운영 중단 요청이다.

13일 개봉하는 영국 영화 ‘디스 이즈 잉글랜드’(사진)가 씨네큐브에서 상영되는 마지막 작품이다. 9월 부터는 태광그룹에서 직접 운영할 것으로 알려졌다. 씨네큐브는 그동안 흥국생명이 임대료를 받지 않는 대신 극장 수익을 1년 단위로 반분하는 형식으로 운영돼왔다. 얼핏 보기엔 쾌적한 환경에서 비싼 임대료 걱정 없이 예술영화를 안정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좋은 조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백두대간에서 7일 낸 보도자료를 보면 실상은 달랐던 모양이다. 연간 평균 관람객 18만 명은 단일 극장에서 예술영화가 동원한 관람객 수로는 고무적인 성적이었지만, 이것만으로 영화 수입 비용과 극장 관리비, 인건비 등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백두대간과 흥국생명의 원래 계약기간 만료 시점은 2015년. 아직 6년이 남아 있다. 백두대간 측은 “당장의 손익을 따지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씨네큐브를 발전시키려 애써왔지만 예술영화 상영 환경이 나날이 악화돼 도저히 현실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운영 중단 요구를 먼저 받긴 했지만, 중단 결정에 대해 ‘자의 반 타의 반’이라고 표현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흥국생명 측은 “백두대간의 극장 위탁 운영 부분은 한번도 적자가 난 적이 없었다”며 “우리가 운영을 맡더라도 기존대로 예술 영화를 계속 상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씨네큐브’를 채웠던 숱한 예술영화들을 계속해서 즐길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모든 문화 관련 사업을 수익 창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없어지지 않는 한 말이다.

기선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