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CD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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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 10면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아내는 아름다워 보인다. 다만 아내에게 그 음악 CD를 선물한 사람이 딴 남자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남편은 모른다

아내는 원래 음악을 좋아했다. 여고시절에는 음악 선생님 때문에 모차르트와 베토벤 그리고 바흐를 많이 들었다. 재수할 때 아내는 팝송 좋아하는 사촌오빠의 영향을 받아 비틀스와 레드 제플린, 딥퍼플에 빠졌다. 그 무렵 아내의 방에는 담배를 입에 문 채 기타를 연주하는 지미 페이지의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을 정도였다.

나는 장르를 불문하고 음악에 대해서라면 문 밖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 남편을 만나서일까? 결혼 후 아내는 음악을 별로 듣지 않았다. 그런 아내가 요즘 이어폰을 끼고 산다.

“웬 CD야?”
“어떤 남자한테 선물받은 거야.”
남편은 어떤 남자가 누구인지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다.

아내가 외출한 휴일, 책을 읽던 남편은 아내의 CD를 노려본다. 언니네이발관 5집. 남편은 CD를 듣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남편은 읽던 책 『내 안의 유인원』으로 눈을 돌린다. 폭력적인 침팬지에 비해 보노보는 섹스와 평화를 사랑하는 유인원이다. 남편은 자신을 보노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보노보는 질투심이 강하지 않다. 그러나 보노보도 호기심은 강하다.

결국 남편은 CD를 듣는다. “그대의 익숙함이 항상 미쳐 버릴 듯이 난 힘들어.” 음악은 음악일 뿐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남편도 잘 안다. 그러나 아는 것 역시 아는 것일 뿐이다. 누굴까? 아내에게 CD를 선물한 사람은. 누가 저 아름다운 음색과 멜로디를, 저 유혹하는 노랫말을 선물한 것일까? 누군지 모르지만 그 남자는 아내를 유혹하고 있다. “언젠가 내가 먼저 너의 맘속에 들어가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지지 않을 거라 했지.”

뭐 어때? 아내에게 멋진 남자친구가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난 그렇게 속 좁은 놈이 아니야. “사랑했다는 말 난 싫은데 아름다운 것을 버려야 하네.” 역시 남편은 속 좁은 놈이다. 나는 더 이상 책을 읽지 못한다. 내 안의 유인원은 보노보가 아니라 침팬지다. 침팬지는 꽥꽥 소리를 지르고 미쳐 날뛴다. 그러느라 벨이 울리는 줄도, 큰 녀석이 들어온 줄도 모른다.

“어, 아빠 집에 계셨네요. 뭐 하세요?”
그제야 침팬지 남편은 아들을 알아본다.
“너 왔구나.”
“이거 언니네이발관이네. 아빠도 좋아하세요? 제가 좋아하는 밴드라서 엄마 사드린 건데.”
음악을 감상하는 남편도 아름답게 보일까? 아내의 CD를 질투하며 몰래 듣는 남편도.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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