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서울시립미술관 '도시와 영상전-의식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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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대중문화의 위력에 대한 콤플렉스, 그리고 순수한 미적 표현이 벽에 부딪혀버린 미술의 한계. 이를 극복하는 대안의 하나가 영상매체를 이용한 미디어 아트다.

미디어 아트 틀 안에서, 또는 다른 방식 안에서 미술은 잃어버린 대중을 다시 찾는 방법으로 미술과 일상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600년기념관에서 11월4일까지 계속되는 '도시와 영상전 - 의식주' 는 미술이 안고있는 이런 고민들과 새로운 방향모색이라는 혼돈스런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02 - 736 - 2024.

서울시가 지난 96년에 이어 두번째 마련한 전시로 지난번 전시가 일종의 위탁이었다면 이번은 추진위원회를 통해 선정된 큐레이터가 전권을 갖고 전시를 준비했다.

지난 97년 광주비엔날레를 이끌었던 미술평론가 이영철 (계원대 교수) 씨가 그 권한을 받았다. 본인도 밝히듯이 이번 전시는 광주의 노하우를 최대로 활용한 흔적인 곳곳에 보인다.

당시 본전시 '공간' 전 참여작가이기도 한 건축가 민선주 (위가건축사무소) 씨가 공간연출을 맡아 기존 전시장 틀을 과감히 깬 색다른 공간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58명이라는 많은 작가의 작품을 1, 2층이 서로 연결되면서 하나로 이어지는 독특한 구조 속에 적절히 배치시켰다.

이승택 (설치).안규철 (입체).홍승혜 (평면) 등 일부 알려진 작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작가들이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미술이 아니었던 것이 중심에 놓여 있다. 순수 회화나 조각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미로찾기를 하는 것처럼 재미있는 동선 속에 만나게 되는 수많은 설치작업들도 어렵다기보다 유희적인 것들이 많다.

마치 방향조정을 하는 배의 키같은 모양으로 미술관 입구에서 관람객을 유인하는 설치물로 시작되는 이번 전시는 기존의 여러 장르들이 서로 접속하는 가운데 새로운 장르의 돌출 가능성, 즉 변화와 이동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시장 밖 승정전 앞의 홍순명의 작업과 미술관 앞 버스정거장의 임민욱의 사진작업, 최은경.김윤의 서울시내 전광판 작업은 과거와 현재.미래를 연결하는 새로운 도시의 이미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전시장 외관 벽면에 쓰여진 유진상의 작업 '벽이 없다면 거리는 빛이다' 는 삭막한 도시환경이라는 현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기획자의 의도가 녹아있는 글귀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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