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 수술 … 타자 변신 … ‘오뚝이 16년’ 이대진 100-1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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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직구 최고속도 시속 137㎞. 왼쪽 팔꿈치가 좋지 않은 봉중근(29·LG)보다 느렸다. 전성기 때보다는 10㎞ 이상 줄어든 구속이다. 그럼에도 5일 잠실 LG전이 끝나자 이대진(35·KIA·사진)은 환하게 웃었다. ‘선취점만 피하자’고 마음 먹은 이대진은 1회 말 첫 타자 박용택을 삼진처리하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범타 처리 행진은 4회 첫 타자 박용택까지 이어졌다.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던졌다. 이대진은 5와 3분의2이닝을 4피안타·3실점으로 막아냈다. 무사사구였다. 팀 타선이 폭발한 덕분에 시즌 2승(2패)째를 거뒀다. 단순한 승리가 아니다. 1993년 해태(KIA 전신)에 입단한 이후 통산 99번째 승리(70패)다.

“사실, 100승 달성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대진은 프로 6년차였던 98년까지 개인통산 76승을 올렸다. ‘포스트 선동열’ 후보 중 한 명이던 그에게 100승은 손쉬운 고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99년 이후 지난해까지 21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이대진 이름 앞에 붙던 수많은 수식어는 ‘재활의 신’으로 통일됐다. 99년 전지훈련 중 오른쪽 어깨 통증을 느꼈다. 2000, 2001, 2004년 등 세 차례 수술대에 올랐다. 후유증은 8년간 지속됐다. 2002년에는 심지어 타자 전향을 시도했다. 97년 해태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던 그가 멈춘 기간 팀도 우승과 거리가 멀었다.

잃어버린 8년이지만 이대진은 “그 기간 마운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진짜 인생을 배웠다”고 했다. “2군 선수와 부상에 신음하는 선수들을 돌아보게 됐다. 부상이 없었다면 훨씬 많은 승수를 올리고, 기록도 세울 수도 있었겠지만 경기장 밖의 눈물은 보지 못했을 것”이라며 재활의 시간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의 후배들은 “이대진 선배 앞에서는 ‘힘들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좌절하려다가도 이대진 선배를 보면 극복해야 한다는 의지가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마운드로 복귀했지만 위력까지 되찾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대진은 2007년 7승, 2008년 5승, 그리고 올해 2승을 기록하며 자신의 꿈이 담긴 마운드를 지켰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99승에 도달했고 불가능해 보였던 100승이 눈앞에 다가왔다. 이대진은 “재활을 하면서도 스스로 ‘정말 100승을 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마침내 100승에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 올해 안에 꼭 도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대진은 후배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그는 “프로선수는 열심히 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구속이 시속 140㎞가 안 된다고 해도 마운드에서는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2009년 이대진과 맞서는 상대 타자들의 시선에서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를 향한 ‘존경심’은 경기장 안팎에서 넘쳐났다.

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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