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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체육과 엘리트 체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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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스포츠 스타는 절대로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결실이다.

얼마 전 일부 국회의원들이 학교체육법안을 발의했다.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합숙 훈련을 일절 금하고, 훈련도 방과 후와 주말에만 하게 하며, 일정 학력 수준에 미달하는 선수는 대회 출전을 제한하는 게 요지다. 엘리트 체육이 금메달 지상주의로 흐르며 비교육적·반인권적 훈련 문화를 조장했고,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과 인권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학생들의 체력 증진을 위해 생활체육 시간은 더 늘리자고 한다.

필자도 전 국민의 체육활동 시간을 늘려 기초 체력을 향상시키자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엘리트 체육을 평가절하하는 데까지 이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중국을 보자. 2억5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는데도 사이클 국제 대회에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다. 반면 중국이 세계적 경기력을 보유하고 있는 종목의 경우 탁구학교·체조학교에서 보듯 어려서부터 집중적으로 훈련받고 육성된 선수들이 있다. 저변이 넓다고 해서 저절로 세계적 경기력이 생기는 건 아니다. 선수와 일반인, 동호인의 역량 차이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인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도 일찌감치 국가대표 선수 합숙소를 짓고 선수들이 많은 지원 아래 훈련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일본 역시 2001년에 최첨단 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를 설립해 국가대표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다. 세계 최고를 위해 재능 있는 선수를 조기에 발굴해 특화 훈련을 시키고 있는 모습들이다.

이렇듯 세계 스포츠계가 엘리트 체육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이러한 법안을 발의하는 건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안대로 되면 국제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나라를 빛내고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일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게 필자의 걱정이다.

그렇다고 선수들이 공부는 전혀 않고 운동만 하라는 건 아니다. 국가가 중학교 과정까지는 의무교육으로 하고 있는 만큼 그 정도의 교육은 받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 기초적 소양과 인성교육은 의무교육을 통해 가능하다. 다음 단계인 고등학교부터는 전문화된 교육을 토대로 그들의 미래를 설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2008년도를 기준으로 전체 고등학생 수는 190만 명이다. 인문계가 140만 명, 실업계가 50만 명이다. 실업계에선 취업을 목표로 3학년의 경우 일주일 수업 35시간 중 26시간을 미용·사진·조리 등을 배우게 한다. 인문계의 직업반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취업을 위해 특정 기술을 배우는 학생들과, 체육을 직업으로 삼고자 열심히 운동하는 학생들이 무엇이 다른가. 실업계 학생들이 조리사가 되기 위해 조리를 배우듯이 운동하는 학생들은 체육인이 되고자 열심히 땀 흘리고 있다.

운동을 할지, 공부를 할지는 학생의 선택에 달려 있다. 공부 못하게 하는 것은 비교육적·반인권적이고, 운동 못하게 하면 교육적·인권적이라는 건지 되묻고 싶다. 세계적 선수가 되겠다고 땀 흘리는 그들한테서 운동할 시간을 뺏는 게 진정 그들을 위한 길일까. 스포츠 선수들에게 운동은 곧 미래이며 꿈이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최선을 다해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기성세대들의 진정한 책임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이런 문제들로 논란거리를 만들고 있을 때 세계 스포츠는 저만치 앞서 가고 있으며, 어릴 때부터 운동에 매진해온 우리의 미래 국가대표들은 정체성의 소용돌이에서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190만 고교생 중 등록된 선수는 전체의 1.4%인 2만6000여 명에 불과하다. 필자의 주장은, 이들을 제대로 훈련시켜 세계적인 선수나 훌륭한 스포츠 지도자로 육성하자는 것이다. 이들은 꿈을 위해 자신의 의지로 운동을 선택했고, 가능성도 있다.

물론 꿈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꿈을 이루지 못할까 미리 걱정해 대학 진학을 위한 억지 수업을 시키는 것과, 열심히 운동해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게 돕는 것 중 어느 쪽이 좋은지는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