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할인점.홈쇼핑등에 밀려 대리점 줄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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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조업체의 매출을 일선에서 떠받쳐주는 유통망인 대리점 체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제조업체와 소비자 사이에서 고유의 상권을 보장받고 상대적으로 '편하게' 장사해온 대리점들이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이후 극심한 매출부진을 견디다 못해 몇달새 최고 1백여개씩 문을 닫는 등 급속한 사양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통단계를 과감히 줄인 할인점.TV홈쇼핑.인터넷 전자상거래 등 '신업태' 로 고객들이 몰려들고 있어 대리점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제조업체들은 전체 매출의 70~80%를 올려주는 대리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유통업체들은 제조업체가 주도해온 시장을 뺏기 위해 서비스경쟁에 나서고 있다.

◇ 대리점 체제 붕괴 = LG전자의 대리점은 올초만 해도 1천5백50개에 달했으나 현재 1천4백50여개로 약 1백개나 줄어들었다.

LG 관계자는 "매년 30~40개씩 늘어나던 대리점이 IMF 영향을 받으면서 사상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고 말했다.

또 삼성전자 대리점 (1천4백여개) 은 연초보다 50여개, 대우전자 (8백68개) 는 43개나 줄었다.

의류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 9백10개였던 삼성 에스에스 대리점은 올들어 1백10개가 없어지는 바람에 8백개만 남았다.

또 6백50개였던 LG패션 대리점은 6백개로 줄어들었다.

생활잡화.식품 분야도 초대형 할인점의 직거래가 활성화하고 가격파괴 공세가 거세지면서 대리점 조직의 경쟁력이 뚝 떨어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모든 업종에 걸쳐 판매물량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감소하고 있어 대리점의 부도는 당분간 더 계속될 것" 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가전제품의 경우 내년부터 일본제품에 대한 수입규제가 풀리면 가전대리점 체제를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정유업계 역시 그동안 정유회사→대리점→주유소의 3단계로만 유통이 가능하도록 법으로 명시했으나 올해부터 정유회사가 주유소와 직거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리점 체제의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 직판점.양판점.무점포판매 두각 = 가전업계 관계자는 "월마트.까르푸 등 외국계 대형할인점의 진출로 수십년 전통의 대리점 체제가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며 "메이커가 앞장서 대리점을 해체할 수는 없다 보니 자율조정을 기다리는 입장이지만 나름대로 다각적인 대응책은 강구중" 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국내 유통망도 미국.일본 등 선진국처럼 여러 회사 제품을 한 장소에서 파는 양판점이나 딜러제.직판점 체제로 재편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쇼핑시간을 절약하고 유통단계를 축소한 통신판매.TV홈쇼핑.인터넷 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형태의 무점포 판매망이 대리점 기능을 대신해 나갈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민중기 (閔仲基) 유통이사는 "일본의 경우 제조업체가 대리점에서 올리는 매출 비중이 30% 안팎에 불과하다" 며 "국내기업들도 대리점 의존도를 대폭 낮춰야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의 조성호 (曺星鎬) 연구위원은 "대리점들이 지역특성에 맞는 소형 양판점 형태로 변신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 이라고 제시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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