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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 방일 이틀째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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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일 양국은 더 이상 '가깝고도 먼 나라' 가 아니게 되는가.

일본을 국빈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파트너십' 의 발판을 마련했다.

양국간 이해와 협력을 저해하던 과거사 문제도 일단 정리했고, 상호발전을 위한 실천 계획에도 합의했다.

일왕과의 만찬, 일본총리와의 정상회담, 국회연설 등 金대통령의 발걸음 하나하나는 역사적 사건이다.

여기서 비롯한 것들이 한갓 흘러간 사실 (史實) 이 아닌 현실로 구현되기를 바라는 게 양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방일 이틀째인 8일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일본총리와의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일본 경제단체 주최 오찬연설, 국회연설, NHK와의 좌담, 오부치 총리 주최 만찬 참석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 정상회담 = 金대통령은 오전 8시55분쯤 숙소인 영빈관 정문에서 오부치 총리를 반갑게 맞은 뒤 2층 회담장으로 올라와 전날 저녁 아키히토 일왕 주최 만찬 등 가벼운 주제로 환담.

이어 양국 정상은 임동원 (林東源) 외교안보수석.문봉주 (文俸柱) 외교통상부 아태국장, 일본 외무성의 노보루 세이이치로 (登誠一郎) 외정심의실장.아나미 고레시게 (阿南惟茂) 아주국장과 통역만 배석시킨 가운데 단독회담에 들어갔다.

양국 정상은 예정대로 정확히 1시간동안에 ▶공동선언 및 과거사 문제^북한.한반도문제▶경제협력.일왕의 방한문제 등 모든 의제에 대해 협의를 완료. 金대통령은 "21세기를 앞두고 이번을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며 "양국 국민간의 감정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과거사 문제를 일단락해야 한다" 고 역설.

두 정상은 "공동선언은 양국 국민이 지켜나갈 규범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고 자평한 뒤 "일본의 일부 인사들이 다시 돌출발언으로 국민감정을 불필요하게 건드리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자" 는 데 의견을 모았다.

金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일본 국민에게 준 충격을 이해한다" 면서 "그러나 과거 데탕트정책이 총 한발 쏘지 않고 공산체제에 대해 위력을 발휘한 것을 거울삼아 대북 포용정책은 계속돼야 할 것" 이라고 설명.

이에 오부치 총리는 "갑작스러운 북한의 실험으로 아직 충격이 계속되고 있다" 면서 "개인적으로는 金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이해하나 일본 국민에게 알려져 있지 않으니 金대통령께서 설명해주기 바란다" 고 요청.

◇ 공동기자회견 = 金대통령과 오부치 총리는 이어 영빈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오부치 총리는 "金대통령과는 지금까지 모두 세차례의 만남에 불과했지만 金대통령의 국난극복에 대한 신념과 정열에 감격했다" 고 토로.

金대통령은 "21세기는 세계가 하나로 가는 세계화시대인 만큼 20세기의 유산을 청산하고 넘어가는 것이 불가피하다" 고 과거사 정리를 거듭 표명. 金대통령은 일본이 한국의 외환위기 타개를 위해 지원해준 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한 뒤 "그러나 일본측이 한국으로부터 농축산물의 수입을 늘리는 등 무역역조 개선에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요망한다" 고 세일즈.

◇ 국회연설 = 金대통령은 이어 국회를 방문, 참의원 회의장에서 중의원.참의원 양원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설을 했고 12차례 박수가 나왔다.

의원들은 金대통령의 입.퇴장시 기립박수를 했다.

金대통령은 "25년전 동경 납치사건과 80년의 사형선고로 생명을 잃을 뻔하였던 내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서게 되는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는 말로 연설을 시작. 金대통령은 "나는 나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자 긴 세월 동안 힘써주신 일본의 국민과 언론, 일본 정부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고 있다" 고 말하자 박수가 터져나왔다.

金대통령은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불행했던 것은 약 4백년전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7년간과 금세기초 식민지배 35년" 이라고 지적, "50년도 안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천5백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 이라고 강조.

金대통령은 "우리 양국이 좋은 이웃, 좋은 친구로서 함께 손잡고 21세기를 개척해 나가는 데 극복하지 못할 장애는 없을 것" 이라면서 "오직 두나라 정부와 국민들의 강력한 실천의지가 요청될 뿐" 이라고 다짐. 연설후 오부치 총리는 "지극히 격조 높은 연설로 큰 감명을 받았다" 고 평가.

◇ 경제단체 연설 = 이에 앞서 金대통령은 경제단체연합회 등 일본 주요 6개 경제단체가 공동주최한 오찬에 참석, '세일즈 외교' 에 나섰다.

金대통령은 연설을 한국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일본 정부와 재계가 보여준 '성의있는 협력' 과 단기외채 연장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 를 표시하는 것으로 시작, "지금이야말로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해야 할 최적기라고 생각한다" 는 말로 맺었다.

金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한국과 일본간 진정한 경제협력이 아시아 국가들간 협력에 하나의 모범이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기대.

우시오 지로 (牛尾治郎) 경제동우회 대표간사는 환영사에서 "각하가 지도력을 발휘해 개혁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 정치결정이 지연됨으로써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현실에 비춰 참으로 부럽다" 고 찬사.

◇ 일본총리주최 만찬 = 金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는 저녁 일본 총리관저 연회장에서 열린 오부치 총리 내외 주최 만찬에 참석. 金대통령은 "방일기간에 나는 오부치 총리의 따뜻한 인품과 훌륭한 지도력, 그리고 한.일관계에 대한 높은 식견과 혜안을 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고 화답.

金대통령은 한.일 어업협정 타결에 언급, "유엔총회에서 귀국한 당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총리께서 피로를 무릅쓰고 다음날 새벽까지 양측 대표단을 독려하면서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고 고마움을 표시.

도쿄 = 이연홍 기자, 이철호.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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