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하는 척 ‘두 얼굴 국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민생 챙기기’와 ‘장외 홍보전’으로 엇갈린 길을 가고 있는 한나라당 안상수(左)·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가 31일 각각 당내 회의에 참석해 눈을 비비고 있다. [사진=안성식 기자]

외화내빈(外華內貧). 18대 국회의 두 얼굴이다. 외형상 드러난 실적은 화려해 보이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곳곳이 부실투성이다.

18대 국회가 가장 자랑하는 기록은 법안 발의 건수다. 지난해 개원 후 지난달 31일까지 발의된 법안은 무려 5345건에 달한다. 17대 국회의 같은 기간 2010건보다 두 배 이상 많다. 특히 이 중 의원 입법이 4622건에 달한다. 같은 기간 17대 국회 1583건, 16대 국회 424건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폭발적임을 알 수 있다.

국회의원들이 법안 발의를 열심히 했다는 것 자체는 칭찬받을 일이다. 그런데 법안 처리율(가결·부결·폐기·철회)을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18대 국회는 5345건의 법안 중 1676건을 처리해 31.4%의 처리율을 나타내고 있다. 같은 기간 17대 국회 44.1%, 16대 국회 50.3%에 크게 못 미친다.

잦은 정쟁으로 국회 파행이 일상화되다 보니 법안을 제출만 해 놓고 심의를 제대로 못 했다는 뜻이다. 발의 주체별로 구분하면 정부 입법의 처리율은 53.1%인 반면 의원 입법은 28.0%에 불과하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의원들이 무더기로 내놓은 법안 가운데 현실성이 부족하거나 문구만 조금 바꿔 재탕·삼탕 우려먹은 것들이 많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비상설 특별위원회도 18대 국회의 ‘대표 상품’이다. 18대 국회는 개원 후 지금까지 총 24개의 특위를 만들었다. 그동안 특위가 가장 많았던 17대 국회는 4년간 48개를 만들었는데 이번 국회는 1년여 만에 그 절반에 도달했으니 남은 기간 중 신기록 달성이 유력하다.

특위는 기존 상임위에서 다루기 힘들거나 여러 상임위에 걸쳐 있는 포괄적 이슈를 한곳에서 다루기 위해 한시적으로 설치하는 기구다. 특위가 많아졌다는 것은 의원들의 의정 활동이 왕성해진 결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명무실한 특위가 많은 게 문제다. 3월 구성된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는 9월 말이 활동 시한이지만 회의가 딱 한 번 열렸다. 그나마 위원장과 간사를 뽑고 끝났다. 지난해 8월 만들어진 중소기업경쟁력강화특위도 9월 말이 활동 시한인데 지금까지 세 차례 회의를 한 게 고작이다. 규제개혁특위(3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위(4회), 남북관계발전특위(4회) 등도 활동이 미미하다.

회의가 없어도 특위 위원장에겐 매달 900여만원의 위원회 활동비·직급보조비 등이 꼬박꼬박 지급된다. 18대 국회가 지금까지 특위 활동비로 지출한 예산만 13억원이다.

18대 국회가 속으로 곪아 가는 게 결국 여야 극한 대립에 따른 장기 공전 때문이란 점엔 이견이 없다. 역대 국회에서 최장 공전 일수 기록은 15대 국회(4년간 256일)가 보유하고 있는데 18대 국회는 벌써 170일을 기록하고 있다. 회기 일수(328일)의 절반 이상을 공전한 셈이다. 이 때문에 국회운영제도개선위는 “국회 운영의 공백을 막기 위해선 의사 일정 결정 권한을 최종적으로 국회의장이 갖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런 개선안을 다룰 정치개혁특위 자체가 공전 중이니 현재로선 답이 없는 상황이다.

김정하·정효식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