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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인 이참 인사 참하긴 하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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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31년 전, 6개월만 체류할 요량으로 내한(來韓)했다가 “한국에 반해 눌러앉았다”는 그의 한국 사랑은 남다르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우리 스스로 우리 관광 상품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한다…한국엔 매력적인 문화가 많이 있지만 지금까지 잘 보여주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비교적 관점에서 외국인들의 구미가 당겨질 만한 한국 문화의 매력 포인트를 잡아내고, 그걸 외국인들의 눈높이에 맞게 포장해 전달하는 역할로는 꽤 쓸 만한 적임자가 아닐까.

일부에선 우리 공기업의 특수한 조직문화를 거론하며 경험 없는 그가 과연 조직을 제대로 장악하고 지휘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피력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귀화인의 첫 공직 접목이라는 실험적 측면 또한 의미가 가볍지 않다.

다만 한 가지가 걸린다. 그가 MB와 똑같은 소망교회 교인이라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전체 인재풀을 펼쳐놓고 고르다 보니 최고 적임자가 공교롭게도, 정말 공교롭게도 그 교회 교인이었다면 누가 뭐라겠나. 누가 봐도 오랫동안 MB와 인연을 맺어오면서 그의 눈에 든 게 발탁 배경이라고 비치니 모처럼의 신선한 인사가 다소 빛이 바래는 것이다. 그나마 이참 사장은 여러 측면에서 납득되는 인사라 다행이지만 ‘고소영’ ‘강부자’ 논란을 부른 그동안의 인사는 그런 식이었다. 능력과 자질이 최우선 고려사항이라기보다 ‘MB마을’ 사람이기 때문에 기용됐다고 느껴지면서 여론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MB가 아무리 활동반경이 넓었다 한들 개인적·캠프적 인재풀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새 검찰총장 인선 과정이 뺄셈식 선택이었다는 보도를 접하곤 그 오그라진 발상에 맥이 풀렸다. 처음부터 영남과 고대는 제외됐고 막판엔 호남을 뺐다는 것이다. 호남을 제외시킨 이유가 더 기가 막히다. 청와대 관계자가 “최고 사정기관 책임자에 아무래도 호남 사람을 앉히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한정된 인재풀에 ‘따귀 빼고 기름 빼면’ 뭐가 남는가. 이러니 온통 그쪽 마을 사람들 아니면 ‘맹물’들만 즐비해 보이는 게 아닌가.

『로마인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가 찬란한 천년 제국을 꽃피웠던 원동력으로 클레멘티아(관대함) 정신을 들었다. 클레멘티아는 관용의 차원을 넘어 적을 끌어안아 내 편으로 동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속주의 노예도, 총칼을 겨눴던 적군도 희망하면 누구나 로마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 적과 동지가 따로 없고 로마를 배반하지 않는 한 모두가 로마인이 될 수 있고 원로원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루비콘강을 건넌 카이사르가 로마를 완전 평정한 뒤 정적 폼페이우스 편에 섰던 장졸들을 모두 사면하고 일부는 중용한 게 대표적 클레멘티아 정책이다. 로마식 화합정치와 카이사르의 그릇 크기가 부럽다. 우리 대통령도 그렇게 멋진 인사, 감동의 정치를 선보이면 좋을 텐데.

큰 폭으로 예상되는 8월 개각은 향후 MB 정부의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초기의 인사 실패를 만회해야 하며, 흔들려온 국정을 추스르기 위해서도 최상의 인사 작품이 이뤄져야 한다. 그 대전제는 인재풀의 풀가동이다. ‘MB마을’의 울타리부터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소통과 화합의 첫 단추를 풀 수 있는 통합·포용의 인사, 클레멘티아 인사가 이뤄진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고소영’임에도 불구하고 참신한 인사로 환영받는 이참 사장. 그의 중용이 빛 바랜 MB인사에 생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참 사장은 10여 년 전 한 강연회에서 한국 사람들을 ‘항아리 속의 참게’에 비유한 적이 있다. 민물에 사는 참게는 털이 많고 발톱이 날카로워 깊은 항아리 속에 넣어도 제 발로 기어 나온다. 그러나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넣으면 한 마리도 나올 수 없다. 먼저 기어오르는 게를 다른 게들이 뒷다리를 잡고 서로 엉겨붙어 떨어지기만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인의 ‘남의 뒷다리잡기’가 딱 그 짝이라며 그게 한국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중요 요소라고 지적했다.

이 사장이 새로 맡은 조직에서 참게 근성을 바로잡아 성공하길 바란다. 그래서 일각의 깜짝쇼 인사라는 우려를 말끔히 해소하고, MB인사의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면 모두의 성공이 아니겠는가.

허남진 논설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