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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이오덕씨 60년대 초등생제자 시 모아 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노란 서숙/고개 숙이고/서숙밭에 새 후치는/깡통/바람 불면/땡그랑 땡그랑/대가빠리만 달린/허수아비도/깍꿀로 덕새를 넘는다. " 34년전 시골 초등학교 4학년생이 쓴 동시다.

조 (서숙)가 익어가는 들판에 새를 쫓는 (후치는) 깡통 소리. 체육시간에 앞구르기 (덕새 넘는다) 하는 것처럼 거꾸로 (깍꿀로) 넘어지는 허수아비. 기교나 수사가 끼어들 틈이 없이 어린이 눈에 비친 정경이 그 모습 그대로 전달된다.

34년이 지난 현재. 코흘리개 꼬마는 40대 후반의 공무원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유년의 추억은 생생하다.

굽이굽이 돌아갔던 등교길, 누나와 나누어 먹었던 점심 도시락, 길가에 핀 코스모스 등등. 그 기억의 가운데에 담임선생님이 있다.

마음 속 생각을 글로 시로 나타내게 가르쳤던 선생님. 글이 모이면 손수 철필로 긁고 등사기로 밀어 나누어주셨다.

친구들 모두 한결같이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도 선생님 덕분으로 생각한다.

그 선생님이 바로 우리 말과 글 가꾸기에 힘을 쏟고 있는 이오덕씨. 그가 30여년전 가르쳤던 아이들의 동시를 모아 '허수아비도 깍꿀로 덕새를 넘고' 를 냈다 (보리刊) .62년 3월부터 2년 반 동안 경북상주군 청리초등학교에서 마주했던 아이들 68명의 시 1백3편을 놀랍게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가 책으로 되살려냈다.

손바닥 크기의 갱지에 쓴 글과 토막난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들. 공부보다는 먹고 사는 것이 앞선 시대였지만 지금으로선 느낄 수 없는 자연과의 일체감이 선명하다.

우리가 그동안 상실했던 물.공기.새.하늘 등을 돌려주고 있는 것. 순수하기 그지없는 아이들의 심성이 뚝뚝 묻어나온다.

"저쪽 하늘에서 구름이/배같이 넘어온다/새파란 하늘. " "오줌을 누러 일어나니/귀뚜라미 소리와 또 무슨/벌레인지 종종종 한다. " "운동장에마 나오면/채송아가 피서/운동장이 환하다" 이씨는 "시와 어린이와 자연이 모조리 병들어 가는 숨막히는 시대에 우리 한번 고향에 돌아가 물소리에 귀를 씻고, 하늘빛을 안아보자" 고 말한다.

사람이 자연을 떠나면 죽음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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