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금호 형제 회장 간 갈등 인감도장 문제로 커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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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그룹이 형제간의 갈등 이후 전문경영인 체제로 들어섰다. 사진은 서울 신문로 본사 로비에 있는 창업주 고(故) 박인천 회장의 흉상. [최승식 기자]

박삼구(64)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28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동생인 박찬구(61) 화학부문 회장을 해임까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힌 대목은 뭘까.

금호아시아나가 대우건설 인수에 따른 자금난을 겪으면서 채권단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서 체결 논의가 한창이던 4월 말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금호석유화학의 대표이사 인감도장 문제로 형제 회장 간 갈등이 커졌다”고 말했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다. 이 관계자는 “당시 금호아시아나와 재무구조 개선 약정서를 완성한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대표이사 인감도장을 찍지 않고 차일피일 미뤄지는 일이 생겼다”며 “사정을 들어보니 박찬구 회장 측이 회사에 보관했던 형 박삼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인감도장을 가져간 뒤 주지 않아 난처한 처지였었다”고 말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대표이사 인감을 관례대로 경영지원 파트에서 보관했다고 한다. 박삼구 회장은 동생의 이 같은 행동에 화를 냈으며 실무진 역시 합의된 재무구조 개선 약정서를 체결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렀다고 한다.

그는 이어 “박삼구 회장 측은 결국 법원 등기소에 인감도장 분실 신고를 낸 뒤 새 인감도장을 등록해 지난달 초 채권단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최종 체결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과 금호아시아나는 지난달 초 대우건설 구조조정 계획안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재무구조 개선 약정서를 맺고 2개월 내에 이를 실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금호아시아나는 지난달 14일 전산 시스템 개발 업체인 아시아나IDT와 자동차 할부금융 업체인 금호오토리스를 팔고, 이어 28일에는 대우건설을 재매각하기로 발표했다.

그렇다면 박찬구 회장은 왜 형에게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인감도장까지 가져가는 실력행사를 했을까.

금호아시아나에 정통한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우건설 인수와 재매각 과정에서 박찬구 회장이 자신은 책임이 없고 형에게 있다는 점을 다짐받기 위해 인감도장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의 계열 분리 등을 원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금호아시아나 고위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이 기자회견 때 발표한 그대로 동생인 박찬구 회장이 ‘본인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룹 지배구조 개선 작업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 과정에서 경영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구 회장은 대표이사직에서 해임됐지만 이사회 이사직 및 주주로서의 권한은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박찬구 회장이 법적으로 긴급이사회를 소집하거나 아들인 박준경 금호타이어 부장과 함께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금호석유화학 정관상 이사회는 의장(박삼구 회장)만 소집할 수 있다. 따라서 박찬구 회장이 긴급이사회를 소집해 이를 뒤집기는 힘들다. 또 추가로 지분을 늘리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다른 이사들을 설득하는 방법도 있지만 28일 열린 이사회에 상정된 해임건의안에 대해 총 7명 중 박찬구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이 이에 동의해 현실성이 떨어진다. 본지는 박찬구 회장 측의 해명을 듣기 위해 자택을 방문하고 전화하는 등 모든 노력을 했으나 반론을 듣지 못했다.

강병철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법인 대표이사 인감도장=법인 대 법인의 공적 거래 혹은 법인 대 개인의 사적 거래에서는 대표이사 인감도장 날인으로 효력이 발생한다. 특히 채무 관련 약정 및 본 계약에서는 인감도장이 꼭 필요하다. 관할 지역의 상업 등기소에서 법인 대표이사 인감을 등록할 수 있다. 분실 땐 상업 등기소에서 새 인감도장을 등록해야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서울은 서소문에 상업 등기소가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인감증명제도를 향후 5년 내 폐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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