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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재임 끝 물러나는 콜 독일 총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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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우리는 졌다. 하지만 인생은 계속된다. "

헬무트 콜 (68) 독일총리가 27일 눈물을 머금은 채 자신과 기독민주당의 총선 패배를 인정할 때 그의 지지자들은 떠나갈듯 "헬무트, 헬무트" 를 연호했다.

마치 지난 90년 냉전의 상징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처음으로 동독을 방문했을 때의 함성처럼. 5차 연임을 꿈꾸며 프로이센 제국의 '철혈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보유한 최장집권기록 19년에 도전했던 유럽의 거물정치인 콜은 독일 통일의 과업을 성취한 신화적 인물로 기억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21세기를 여는 세계의 한 지도자로서, 유럽통합 및 베를린으로의 수도 이전 등 유럽과 독일의 현안들을 솜씨있게 요리하겠다던 콜의 꿈은 최악의 실업률과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의 반감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콜은 지역구에서 사민당 후보에게 패배, 비례대표로 간신히 하원의원에 당선됐지만 총선참패의 책임을 지고 기민당 당수직 도전을 포기하는 한편 "당의 늙은 군인으로 백의종군할 것" 이라고 밝혔다.

그는 "의원직은 유지하겠지만 앞으로 유럽연합 (EU) 내 고위직도 맡을 생각이 없다" 고 말해 사실상 정치일선에서는 물러설 의사를 밝혔다.

지난 82년 사민.자민당 연립정권의 붕괴로 헬무트 슈미트 당시 총리가 불신임 사퇴한 이후 총리에 올랐을 때만 해도 그는 과도기적인 인물로 비춰졌다.

어눌한 말씨와 거대한 체구는 기민함.노련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콜은 특유의 정치력을 발휘해 선거때마다 사민당 후보를 누르며 통독작업에 이은 유럽통합의 완결에 가장 적합한 지도자로 우뚝 섰다.

그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대통령.자크 들로르 전 EU 집행위원장과 함께 유럽통합의 주역으로 활동했으며 역사적인 독일 통일을 성취해냈다.

그런 콜이 통일의 수혜자인 옛 동독주민의 지지상실로 물러나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에 다름아니다.

무엇보다 콜과 기민당이 약속했던 동독의 경제재건이 약속한 대로 풀리지 않았고, 실업률은 최고 18%까지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라인강변 루트비히스하펜에서 가톨릭신자인 한 세무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콜은 16년 통치를 통해 세계에 평화무드를 무르익게 했고, 주변 국가들에는 신뢰할 만한 동맹국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그는 냉전이 최고점에 달했던 80년대의 어둡고 긴 터널을 뚫고 전세계인들을 평화의 길로 안내한 지도자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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