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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세상보기]그래도 일본은 있을 것 같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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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은 경제력은 강하지만 나라 곳곳에 허점이 도사리고 있다는 속내를 표현하자면 '일본은 없다' 가 된다.

반대로 여러가지 취약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강하다는 표현을 다섯마디로 줄이면 '일본은 있다' 가 된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중남미.러시아로 번지더니 이제는 일본발 (日本發) 세계 공황의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면 지금 일본은 과연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만약 일본 경제가 침몰하기 시작하면 그 여파는? 쉽게 대답을 찾기 어렵다.

최근 일본은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와 이상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무디스가 장차 일본의 신용등급을 강등시키겠다고 하자 발끈한 일본에서 무디스를 역 (逆) 평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실제로 무디스는 5개 일본 건설회사의 신용등급을 두단계 이상 하향조정했다. (일본에 귀띔 한마디. 한국을 크게 골탕먹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의 동정을 살필 것!) 일본을 김새게 한 것은 이 와중에서 유러머니지 (誌)가 일본의 국가 위험도를 18위에서 23위로 5단계나 떨어뜨린 것이다.

(그러나 이 평가에선 한국도 22위에서 34위로 무려 12단계나 추락했으니 그것으로라도 위안을 삼으시길. )

형세로 봐선 경제에서도 불침항모 (不沈航母) 임을 자랑하던 일본도 드디어 일본은 없다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더 난처한 것은 미국과 국제통화기금 (IMF) 이 세계 경제위기의 주된 원인을 일본의 금융구조 개혁 지연과 내수 부진으로 돌리고 있는 점이다.

특히 IMF 연례 보고서는 일본이 금융개혁과 경기부양을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아시아에 제2의 금융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겁을 주고 있다.

세계는 일본인들로 하여금 허리띠를 풀고 돈을 좀 더 쓰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이 소비를 늘릴지, 또 일본 경제가 침몰한다는 말이 맞는 말일지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인은 본래 축소지향의 국민성을 갖고 있다.

평론가 이어령 (李御寧) 의 소론에 따르면 일본은 축소를 지향할 때 강하지 확대를 지향하면 실패하는 민족이다.

일본인 자신들도 자신들의 축소지향적 기질을 찬양한다.

"조그맣게, 보다 더 순수하게, 보다 본질적으로 심화 (深化) 돼가는 민족성이 세계 시장에 웅비하는 천재의 근저를 이루고 있다" 고 말한다.

그들은 조그만 차를 타고 토끼장 속에서 개미떼 같이 산다.

더구나 요즘 그들의 소비심리는 '동면상태의 고슴도치' 처럼 웅크리고 있다.

그들은 허리띠를 푸는데 익숙지 못한 국민들이다.

감세와 투자 확대로 총규모 16조엔의 경기부양대책을 쓴다고 해도 그것의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또 그 정도론 세계 경제를 일으켜 세우기에 역부족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세계 제2위 경제대국의 침몰 가능성을 너무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그동안의 그들의 축적을 잊은 사람들이다.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고 실업률이 높아져도 그들의 외환보유고는 2천2백억달러를 넘는다.

경상수지 흑자도 1천억달러에 가깝고 물가 상승률은 2%대에 안정돼 있다.

더구나 그들은 아직도 1억 총화의 단결력을 갖고 있다.

피터 드러커 교수는 이 단결력을 "어떤 목표에 공감대만 형성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는 게 일본인" 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그러니 일본은 없다 쪽으로 형편이 돌아가도 '그래도 일본은 있을 것 같다' 는 유보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지금으로선 좀 더 정확할지 모른다.

(이 정도로 일본을 치켜세웠는데, 뭐 없나. 오부치상, 이번 DJ 방일때 한국민에게 용서를 빌거지. 한국에 대해선 노 (NO) 라고 말하면 안돼. 이렇게 말해야 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용서를 비는 마음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김성호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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