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민주당 집권 땐 ‘과거사’ 해결 적극 나설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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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1 야당인 민주당이 집권하면 일제 침략으로 인한 종군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전망이다. 다음 달 30일 총선에서 집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민주당이 집권 자민당의 보수 노선에서 탈피해 과감한 과거사 처리와 외교 정책을 추진키로 했기 때문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전격 체결해 양국 간 무역·투자를 크게 확대키로 했다. 한국 등 아시아 국가와도 FTA를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사진) 민주당 대표는 27일 도쿄 시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선에 대비한 ‘정책 공약(매니페스토)’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는 당초 당 본부에서 할 예정이었으나 200명으로 예상됐던 취재진이 7배로 늘어나면서 급히 장소가 시내 호텔로 변경되는 등 일본 언론들은 민주당 정책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과거사 처리=내정 문제의 핵심만 제시한 매니페스토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60쪽 분량의 정책집에는 ‘전후 과제의 처리’ 문제가 명기됐다. 각료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금지, 종군위안부 피해 조사와 배상 문제도 당론으로 정책집에 포함됐다. 민주당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국회 도서관에 일제가 전쟁 중에 했던 가해 행위를 조사하는 ‘항구 평화 조사국’을 설치할 방침이다. 재일동포 등 영주 외국인의 지방 참정권 허용 문제에 대해서는 창당 때의 정신을 계속 유지한다고 정책집은 밝혔다. 민주당은 1996년 창당 이후 ‘영주 외국인의 지방 참정권 검토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왔다. 독도와 관련해서는 “영토 문제 해결은 어려울 뿐 아니라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우리나라가 영토 주권을 갖고 있는 북방영토,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표현) 문제의 조기, 그리고 평화적 해결을 위해 끈기 있게 대화를 거듭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집권해도 독도를 둘러싼 한·일 외교 갈등은 여전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외교·통치 구조 변화=현실 중시 외교 노선으로 크게 방향을 틀었다. 대미 관계에선 자민당의 ‘미·일 동맹 중시’에서 ‘할 말은 하는 대등한 외교’로 전환키로 했다. 중앙집권 체제에서 지역분권 체제로 크게 전환된다. 하토야마는 “정권교체는 자민당 장기 정권을 바꾸는 차원이 아니라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정착된 관료 주도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꿔 국민이 정치의 주역이 되는 시대적 사명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또 총리 직속기관으로 국가전략국·각료위원회를 설치해 정치 주도 정책을 펴고, 행정쇄신위원회를 신설해 정부의 지방출장기관을 전면 폐지하는 등 과감한 민영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방송·통신 분야 개혁=방송·통신 분야에서 시장경쟁 원리를 대폭 강화키로 했다. 특히 제한된 방송 전파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일정 범위 내에서 전파 경매를 허용하고 채널 할당 제도도 근본적으로 개혁하기로 했다. 또 NHK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공영 방송 목적에 맞지 않는 자회사 정리, 위성방송(BS) 등 NHK 소유 채널 조정 등을 추진키로 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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