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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우리에겐 왜 월터 크롱카이트가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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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뉴스의 전설’ 월터 크롱카이트, ‘불확실한 시대에 확신의 목소리’를 들려준 그가 타계했다는 소식이 아수라장 국회와 겹쳐진 요즘, 시청자의 신뢰를 듬뿍 받는 믿음직한 앵커가 없는 한국 방송계의 초라한 현실이 더 아쉽다. 1960, 70년대 미국인들은 크롱카이트가 전하는 ‘30분간의 진실’을 듣기 위해 저녁 밥상에 모여 앉았다. 그가 전하는 뉴스로부터 현실을 깨닫고 그의 말투와 표정에서 해석의 실마리를 얻어냈다. 그를 통하지 않으면 뉴스가 되지 않았다. 보도국 기자들이 써대는 각종 기사들은 그의 손을 거쳐 ‘진짜 뉴스’로 만들어졌고, 그의 목소리에 실리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앵커란 ‘해무(海霧) 속의 등대’와도 같은 존재다. 그런데 우리에겐 그런 존재가 없다. 우리의 앵커는 ‘뉴스를 읽어주는 사람’이거나 기껏해야 방송사의 대변인에 불과하다. 더욱 거세지는 방송사의 조직문화에 갇혔기 때문이다.

예전만 해도 ‘앵커의 시대’가 있기는 했다. MBC는 이득렬·엄기영·정동영·박영선이 80, 90년대 저녁의 황금시간을 장악했고, KBS에는 박성범·이윤성·류근찬 타선이 중후하고 박진감 있는 목소리를 전국에 타전했다. SBS는 맹형규를 발굴해 ‘8시 뉴스’라는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 이들은 그 어려웠던 군부정권 하에서, 또는 민주화 전환기에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느라고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튀지 않는 태도, 실체를 캐는 힘, 실체를 보여주는 방식에서 그들의 개성이 묻어 나왔다.

방송사의 정치적 입지, 조직의 내부 위계와는 상관없이 이들의 감각과 전문가 기질을 밀어주면 앵커의 생명은 길고 시청자들의 신뢰도 그만큼 쌓인다. 크롱카이트 이후 대표적인 앵커맨 댄 래더(CBS), 톰 브로커(NBC), 피터 제닝스(ABC)는 사실상 종신직이었고, 보도본부를 진두지휘할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필요하다면 현장 취재와 생중계를 감행하기도 한다. 기획·취재·편집과정은 물론, 톱뉴스와 타이틀을 결정하는 데까지 깊숙이 개입한다. 균형을 향한 체취와 경륜이 실리는 것이다. 리얼리티에 닻을 내리는 솜씨에 시청자들은 열광하고 신뢰한다. 아직도 현장을 지키는 69세의 노익장 브로커의 눈에 띄지 않은 사건은 사건도 아니고, 인터뷰 요청을 받지 못한 사람은 유명인 축에 끼지 못한다.

지금 우리의 앵커는, 미안한 말이지만, 애송이다. 직급·연봉이 낮고 경륜도 짧다. 발음 좋고 깔끔한 젊은 사람을 앉혀 보도국이 생산한 완제품을 잘 읽어주기만을 바라는 조직문화 때문이다. 그에게 주어진 권한은 문어체 기사를 구어체로 부드럽게 바꾸는 일에 한정돼 있다. ‘읽는 앵커’가 탄생하는 배경이다. 앵커 뒤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는 보도국과 운영진은 뉴스의 색깔을 왈가왈부하고 편집 방향에 훈수를 두는 앵커를 참지 못한다. 교체 대상인 것이다. 앵커를 읽는 사람으로 고정시킨 대신, 보도국 PD들은 ‘추적 60분’ ‘PD수첩’과 같은 PD저널리즘으로 상승세를 구가했다.

군부독재의 기반이었던 옛 미디어법은 30년이 지나자 ‘조직 독재’를 낳았다. ‘자본의 방송장악’을 막는 게 미래의 숙제라고 한다면, 조직 독재를 혁파하는 것은 현재의 문제다. 시청자들, 특히 사이버 공간을 질주하는 영상세대를 ‘방송 3사 체제’와 화석화된 조직문화에 묶어둘 것인가, 아니면 시장개방과 경쟁을 도입해 걸출한 앵커맨을 만들어낼 것인가? 방송계의 조직문화를 잘 아는 과거의 용장들이 미디어법 육탄전에 투입돼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엄기영은 규탄의 횃불을 치켜든 MBC 사장, 정동영은 후방에서, 박영선은 전방에서 투사로 나섰다. 류근찬은 통과된 수정안의 원제안자, 맹형규는 후방 지원대의 대장, 이윤성은 아수라장 속에 방망이를 두드린 국회 부의장이다. 방송 ‘산업’ 육성이라는 미디어법의 화두에 방송 ‘쟁이’ 문제를 살짝 얹어 생각한다면, 이들은 모두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지 모른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