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랩' 갱스터랩 듀오 갱톨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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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에게 랩을 부르는 것은 부담스럽다.

몸 자체가 리듬인 흑인들의 음악에 어법과 발음구조가 다른 한국어를 붙여 빠르게 내뱉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물론 한국 랩은 서태지의 전율스런 '난 알아요' 가 성공한 이래 높은 톤의 반복되는 후렴구 정형을 들려준 DJ DOC, 유치하게 들리지만 신나는 룰라의 크라잉랩 등으로 발전을 거듭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90년대 한국랩은 대부분 '멜로디 - 랩 - 멜로디' 구조로 정형화해 있다.

랩이 멜로디 사이 끼인 양념으로 굳어진 것이다.

멜로디의 하부구조로 격하된 랩의 지위는 리드싱어 아래 래퍼 - 댄서로 계층화된 댄스그룹의 구조에서도 재확인된다.

그러나 갱스터랩 듀오 갱톨릭의 데뷔앨범 'A.R.I.C' 에선 랩이 당당한 자기 위치를 갖고있다.

우선 11개 수록곡 전부 멜로디가 거의 없고 A4용지 한장 (2백자 원고지 8장)에 달하는 랩으로 메워져, 철저히 리듬 위주다.

목소리의 높낮이를 적절히 조절하면서, 조금 뻐기듯 힘을 실어 부르는 두 멤버 (김도영.임태형) 의 발성 역시 주목할 만하다.

재미교포출신 힙합가수들의 흑인풍 노래와 달리 기름기가 빠진 담박한 음색에서 '한국형 랩' 의 가능성이 느껴진다.

멜로디가 별로 없는 대신 가사가 진하게 다가오는 것도 특징이다.

멤버들에 따르면 갱톨릭의 음악에서 가사 (메시지) 는 리듬과 사운드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한다.

랩중에서도 특히 흑인들의 분노와 소외감을 폭력적이고 거친 가사로 표출하는 갱스터랩을 표방한 듀오인 만큼 가사에 대한 강조는 당연해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가사는 오리지널 갱스터랩처럼 사회나 권력에 대한 강렬한 저항을 담고있지는 않다.

20대 젊은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부조리에 대해 직설적인 감정을 토로할 뿐이다.

"아스피린 좀 가져와봐/머리가 터질 것 같애/우 화가 나" 같은 자기 독백, "표현의 자유 보장된 우리나라에서/왜 그렇게 사랑타령만 해대는 것인지/그렇게 다들 기계체조하며 코메디하는 것이/뭐가 그렇게도 좋은 것인지" 같은 가요계에 대한 냉소와 저주, "이 무거운 분위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가/여기저기 수많은 아저씨들을 봐/고개를 숙인채 한숨이나 쉬고" ( '파고다' ) 같은 소박한 응시가 대부분이다.

갱톨릭은 자기들의 음악이 완성형 아닌 진행형이라며 부족한 점의 존재를 시인한다.

사실 서울 강남 출신의 20대초반 두 젊은이가 세상을 체험한 깊이는 갱스터랩의 원래 무게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일지 모른다.

편협한 감정표출에 그쳐 보편적 공감을 얻는데 실패한 곡도 일부 발견된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들을 보면/나두 모르게 괜시리 짜증이 나/ (중략) 특히 옆구리에 한국여자 끼고 가는 놈들" ( 'Oh No' ) 같은 구절에선 치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일상과 분노를 우리 맛 나는 사운드에 솔직하게 담아냈다는 점만큼은 '겁없는' 두 아이들의 멋진 성과라 할 만하다.

한국랩이 또한번 우리 곁에 와 서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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