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한국기업 매물 더 싸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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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아직도 한국기업은 값이 싸지 않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과 정부 대응도 실망스럽다" . 미국의 최대 투자은행인 모건 스탠리 딘 위터는 최근 전세계 회원사들에 보낸 월례 투자전략보고서 (9월 7일자)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두운 면이 많다' 는 제목의 이 월례 보고서에서 모건 스탠리는 특히 현대자동차 노사갈등, 기아자동차 국제입찰 유찰, 금융기관 통합 등을 예로 들면서 "이것들이 외국투자자들을 낙담케 하고 있다" 고 평가했다.

모건 스탠리는 지난 7월 월례 보고서에서 "한국은 외국인투자가들에게 맛있는 바비큐를 만들어 주겠다고 해놓고는 정작 요리에 쓸 쇠고기조차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고 꼬집은 바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여건은 달라지지 않았다" 고 지적했다.

본사가 단독 입수한 보고서의 주요내용을 정리한다.

◇ 한국기업 여전히 싼 값 아니다 = 한국 상장기업들의 자료를 분석할 때 국내총생산 (GDP) 대비 기업내재가치 (EV) 지수는 올 9월말 현재 0.80 (추정) 으로 지난 94년말 0.88에 비해 조금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총자산 대비 EV는 0.72에서 0.76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이 기간 한국의 종합주가지수 (KOSPI) 는 1천1백포인트에서 3백30선대로 곤두박질쳤다.

주가가 기업의 실제가치를 반영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직도 한국기업은 스스로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또 지난 10년간 한국의 주가수익률이 아주 보잘 것 없었던 점을 고려할 때 (올해 자기자본이익률.ROE=0.8로 추정) 한국은 기업의 자산.주식가치를 더 낮춰야 할 것이다.

◇ 빅딜 왜 하나 = 한국의 재벌들은 현재 유사한 사업부문을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이런 수평적 합병은 일반적으로 반 (反) 경쟁적으로 간주된다.

최근 현대.삼성.LG.한화그룹은 일부 사업부문의 합병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런 합병은 얻는 게 별로 없다.

여러 재벌을 통합해 또 하나의 거대재벌을 만든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 실망스런 한국의 구조조정 = 한국기업 및 정부는 최근 구조조정의 고삐를 늦추고 있다.

또 대량감원과 더불어 외국인의 한국기업 인수가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어 금융감독위원회는 7개 부실은행에 대해 폐업을 강요하기보다 (조건부 승인을 통해) 스스로 회생의 길을 찾도록 요청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2백77명의 정리해고는 당초 1천5백38명을 정리해고 하려던 계획과 큰 차이를 보였다.

기아자동차의 입찰 역시 유찰돼 재입찰에 부쳐졌다.

이런 구조조정 계획의 차질은 해외 주식투자자들에게 "앞으로 돌아올 수익이 보잘것없다" 는 것을 의미해 이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 자발성 부족한 기업 구조조정 = 한국의 기업 구조조정은 정부 주도로 시작됐다.

기업은 억지로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기업은 구조조정이 효율적이고 투명한 경영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이는 기업 구조조정시 기업 스스로 변화와 효율성을 모색하고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다른 나라의 경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한국기업들이 이제 진정으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 IMF 처방이 디플레이션을 불러왔다 = 한국 금융위기의 가장 근본적 원인은 부채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부채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IMF 프로그램은 한국에 기업도산.구조조정.출자전환이라는 긴축을 요구했고 이로 인해 디플레이션이 초래됐다.

그러나 한국은 디플레이션에 따른 고통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한국이 경기확장, 특히 내수를 진작하기 위해 더욱 팽창적인 재정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기대한다.

이 결과 공공부문 적자가 확대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지만 디플레이션은 진정될 것이다.

정리 =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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