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쓰리고에 피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0여년래 한국인의 국민적 오락이라면 주저없이 고스톱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참으로 남녀노소 구분없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어울릴 만한 놀이로 이만한 것이 없다.

고스톱의 두드러진 특징 하나는 규칙의 유연성이다.

판돈의 크기에서부터 점수 계산방법, 보너스 얹어주는 방법 등을 모두 분위기에 맞춰 적당히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쩌다 한번 어울린 사람들끼리는 미리 '룰 미팅' 을 해야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행하는 규칙도 바뀐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면 판을 가파르게 만드는 것이 변화의 흐름이다.

아기자기하게 오락가락하기보다는 따도 화끈하게 따고, 잃어도 화끈하게 잃는 쪽으로 유행이 변해 온 것이다.

놀이의모습은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한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20세기를 '극단의 시대 (The Age of Extremes)' 라 불렀듯 현대인의 의식은 양자택일의 극단으로 몰려 왔다.

고스톱 규칙의 변천사는 현대적 극단의식의 투영일까. 극단화의 세계적 추세보다 '모 아니면 도' 로 흘러 온 우리 사회의 한탕주의에 살필 점이 더 많다.

사업을 해도 줄만 잘 잡거나 업종만 잘 맞추면 관리에 신경 안써도 성공이 보장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산업은 경쟁력을 잃어왔다.

정치를 해도 권력쪽에 서기만 하면 잣대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으니 경쟁과정의 도덕성은 신경쓸 문제가 아니었다.

학생들조차 한차례 입학시험의 성공을 다년간의 꾸준한 학업보다 더 중요한 진로의 열쇠로 여기기에 족집게과외가 성행했다.

경제위기속에 경제계의 분위기는 변화를 겪고 있다.

줄을 아무리 잘 잡아도 틀 전체가 무너지는 판에서는 별 수 없다는 생각, 업종을 아무리 잘 맞춰도 착실한 경영관리 없이는 효과를 제대로 거둘 수 없다는 생각이 자라나고 있다.

교육계 역시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 아래 서울대를 시발점으로 해 전에 없이 획기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 성공을 미리 장담할 수는 없지만 모처럼의 의욕적 시도라는 사실만으로도 고무적이다.

아직도 구태의연한 동네는 정치권이다.

'성공하면 공신, 실패하면 역적' 이 지금도 사정정국을 바라보는 정치권 안팎의 기본시각이다.

어쩌다 여권 중진이 하나 걸려들어도 사정의 공평성에 감복하기보다는 파워게임의 속내를 궁금해 하는 것이 시정사람의 마음이다.

정치혐오증이 선거혐오증.민주주의혐오증으로 도져나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