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기술보다 사람이 우선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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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호 30면

기업에서 인재를 채용할 때 주의 깊게 살피는 것 중 하나가 성공 경험이다. 특히 신규 사업을 책임지는 사람을 뽑을 땐 성공 경험을 갖고 있느냐가 판단의 결정적 변수가 된다.

신현만의 인재경영

한번은 어떤 대기업으로부터 수처리 관련 신규 사업의 총괄임원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물 관련 사업은 전망이 밝아 많은 기업이 관심을 갖고 있고,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사업 진출 움직임이 활발해 그동안 몇 번 기업에 인재를 추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원하는 인재는 조금 특별했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는 신규 사업 담당 임원이 ‘물 사업에 기획단계부터 참여해 성공으로 이끈 경험’을 갖고 있길 원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국내 기업 가운데 수처리 사업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따라서 CEO가 원하는 사람은 해외 영입이 불가피했는데, 이 회사는 그때까지 외국인 임원을 영입한 경험이 없었다. 게다가 외국인을 영입해도 그가 조직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제도나 문화적 여건을 갖추지도 못했다. 이에 따라 ‘성공 경험을 포기할 것이냐, 아니면 외국인이라도 채용할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는데 우여곡절 끝에 성공 경험은 갖고 있되 꼭 수처리 분야가 아니어도 좋다는 동의를 받아 인재 추천을 진행했다.

성공 경험을 중시하는 것은 이 회사만이 아니다. 경험이 풍부한 CEO들이 한결같이 성공 경험을 강조하는 것은 성공한 사람이 또 성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신규 사업을 추진할 때 처음 계획이 그대로 이행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업의 결과는 대개 계획과 크게 다르다. 이 때문에 경험이 많은 벤처 투자자들은 사업계획서보다 누가 사업을 이끄느냐를 중시한다.

몇년 전 경제주간지 ‘포브스’에는 ‘바이오기술로 돈 벌기’라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기사에는 바이오벤처에 대한 다섯 가지 투자 요령이 들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즉, 투자자들은 기술 자체에 투자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는 연구를 이끌고 있는 전문가들에게 투자하는 것이므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잘 살펴야 한다는 충고였다.

일반적으로 사업이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못해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사업 책임자의 능력과 의지가 사업의 지속에 결정적 변수가 된다. 만약 책임자의 의지가 약하면 사업은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책임자가 실패 경험을 갖고 있을 경우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을 만들지 못할 뿐 아니라 해법을 만들어도 자신 있게 추진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때 책임자가 경험이 풍부하고 의지가 강하다면 자기 책임하에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이 때문에 통상적으로 기업이 신규 사업을 추진할 땐 기술이나 자금보다 먼저 사람을 살피게 된다. 해당 사업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지 않다면 기술을 확보하고 자금을 마련하기 전에 사람부터 찾는 게 순리다. 이때 사업을 성공시켜 본 책임자를 확보했다면 그 사업은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과 같다. 그가 와서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기술과 자금을 마련할 것이며, 이를 위해 필요한 인재를 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업은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게 돼 있다. 더구나 기술이나 자금이 부족한 상태에서 사업을 도모한다면 기댈 곳은 사람밖에 없다. 기술을 들여오려면 많은 비용이 들어갈 뿐 아니라 어떤 때는 기술유출 논란에 휘말려 기술확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데려오면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기술전수 효과도 누릴 수 있다. 특히 전문성이 높은 인재의 영입은 기술도입과 맞먹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기업이 사업의 성공은 기술과 자금 확보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사업 책임자는 나중에 찾아도 된다고 보며, 심지어 일부 기업은 전문가를 찾아 사업을 맡기기보다 혼자 힘으로 끌고가 보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또 사전에 작성한 사업계획이나 확보한 기술이 나중에 합류한 책임자의 판단과 일치하지 않으면 그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경영 컨설턴트인 키스 맥팔랜드는 『브레이크 스루 컴퍼니(break through company)』라는 책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충성도 높은 고객 한 컵, 블루오션 전략 두 스푼, 조직 리엔지니어링, 그리고 약간의 식스 시그마 등을 적절하게 조합하면 기업이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은 색칠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명작을 그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다. 그는 미국에서 창업 이후 지금까지 15년 이상 시장 평균의 3배에서 15배까지 매출이 급증한 기업들을 조사한 결과 성장 목표 달성의 비결은 현란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었다고 강조했다.

사업, 특히 신규 사업엔 먼저 사람이 있고 나서야 기술과 돈이 있지, 돈과 기술 뒤에 사람이 있기는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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