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서 의료봉사 ‘가장 멋진 여름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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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사선생님들 왜 안 오시느냐고 환자들이 난리입니다. 올해 안 될까요.”

서울아산병원 의료팀은 5월 몽골 국립의대 외과 세르겔렌 오르고이 주임교수의 간곡한 요청을 받았다. 이 병원 의료봉사팀이 2007년 여름 몽골에서 700여 명을 치료하고 40여 건의 수술을 했는데 당시 ‘한국 의사 용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재방문 요청을 한 것이다. 당시 환자들이 밀려들었지만 일정상 진료를 할 수 없어 “2년 뒤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왔다.

발이 심한 기형이었던 네 살배기 어린이 빌공을 그때 만났다. 귀국 후 빌공을 한국으로 초청해 무료로 수술했다. 발등으로 힘들게 내딛던 빌공은 수술 후 제대로 걷기 시작했다. 의료팀은 23일 다시 몽골행 비행기에 올랐다. 2년 전 약속을 지킨 것이다. 출국 전날 만났을 때 이들은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서울아산병원 의료봉사단원들이 23일 몽골로 출국하기 전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여름휴가를 의료봉사로 대신했다. 항공료와 숙박비 160만원을 본인들이 부담했다. [최승식 기자]

이번 의료팀에는 의사 12명과 간호사·약사 등 총 16명이 참여했다. 모두 이번 봉사를 여름 휴가로 대신했다. 한 사람당 160만원의 항공료와 숙박비를 부담했다. 최대한 현지에서 많이 진료하기 위해 30일 오전 4시30분 인천공항에 도착해 그날 출근하도록 일정을 짰다.

5월 말 지원자 모집공고가 나가자 사흘 만에 30여 명이 지원했다. 공고를 낸 혈관외과 박관태(39) 교수는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 줄은 몰랐다”며 “비행기 표를 못 구하거나 휴가 일정이 안 맞아 포기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번 봉사활동을 떠나기까지 서울아산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돌아간 몽골 의사들의 도움이 컸다. 단장을 맡은 비뇨기과 김건석(49) 교수는 “현지 의사들과 한 달 전부터 연락을 주고받으며 위암·유방암 등 중증 환자들 상태를 점검하고 수술을 준비했다”며 “몽골 국립의대 등에서 15건의 수술을 하고 오지 마을에 들어가 500여 명을 진료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재작년에 이어 두 번째 몽골 봉사에 참여한 약사 안은주(32·여)씨는 “지난번에 갔을 때 환자가 너무 많아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겼는데 이번에도 쉴 틈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팀은 메스부터 진통제까지 모든 약품과 수술 기구를 가져간다. 외과 전문의 고범석(35)씨는 “이틀 전 팀원들이 모여 필요한 물품을 챙겼는데 대형 상자 28개 분량이었다”며 “현지 사정이 워낙 안 좋으니 최대한 많이 가져가서 가능한 한 많이 남기고 돌아오려 한다”고 말했다. 몽골 의료 환경은 한국보다 30년가량 뒤처진다. 대형 병원에 수술대 조명이 없어 의사들이 머리에 헤드램프를 쓰고 수술할 정도다. 기자재도 대부분 낡았다. 아산병원은 450만원 상당의 의약품과 수술키트 등을 봉사단에 내놨다.

이번 봉사단의 목적 중 하나는 의술을 전수하는 것이다. 혈관외과 조용필(45) 교수는 “현지 의사들이 수술을 직접 돕거나 참관하기로 했다”며 “기술을 나눠주면 우리가 떠난 뒤에도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과 전공의 조자영(30·여)씨는 “의사가 된 순간부터 늘 다른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가 왔다”며 “환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글=홍혜진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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