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위폐에 눈뜨고 당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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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개방화와 국제화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외국 위조지폐가 증가하고 있다. 외국 위조지폐의 국내 유통이 그동안 주로 미국 달러였으나 최근에는 유럽의 유로와 중국 위안 등 '다국적화'되고 있다.

지난 28일 제주도에서는 외국인 3명이 위폐 1만5400유로(2200만원 상당)를 우리 돈으로 환전한 뒤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환전된 유로화는 100유로(약 14만4000원)권 154장으로 위조 유로가 국내에서 대량으로 발견되기는 처음이다.

◇위조 유로.위안에 무방비=유로가 대량으로 유통될 수 있었던 것은 국내 은행들의 외화 위폐 감별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은행이나 환전소들은 달러 위폐 감식기는 보유하고 있지만 기타 외화의 위폐 감식기는 갖추지 못하고 있다.

외환전문은행인 외환은행조차 340여개 점포 가운데 50여곳에만 기타 통화 위폐 감식기를 설치하고 있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제주도에도 일부 은행지점만 위조된 기타 통화를 구분할 수 있는 감별기를 설치했을 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발견된 외국 위조지폐는 모두 544장으로 2002년(286장)에 비해 90.2%나 늘어났다. 이 중 위조 달러가 413장으로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기타 위조 외화'도 131장에 달했다. 2002년 기타 위조 외화는 58장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위폐가 발견될 경우 대외 신인도 추락을 우려한 은행들이 위폐 발견사실을 숨기고 있어 실제로는 100만~200만달러 규모의 외국 위폐가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은행과 환전소에서는 기타 외화에 대해서 한국은행이 배포한 '외국 화폐 견본'과 지폐를 육안으로 비교하거나, 촉감이나 재질이 이상한 지폐를 일일이 손으로 골라내는 원시적인 위폐 식별작업을 하고 있다. 낯선 외국 화폐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정교한 위폐 기술=최근 들어 종이의 조직과 무게, 색조와 홀로그램조차 진짜 지폐와 구분이 가지 않는 위폐가 등장하는 등 전문 위폐범들의 위조지폐 제작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비(非)달러 통화를 감식할 수 있는 감식 전문가는 외환은행 위폐감별팀 서태석 부장을 포함해 3명이 전부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조차 감식 전문가가 없다.

K은행 외환담당 직원은 "국내에서 유통이 잘 되지 않는 위안화나 태국의 바트 등은 아예 받지 않거나 작은 소액권만 원화로 환전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위폐 감별 전문가들은 고액 환전 때 지폐를 면밀히 관찰해 ▶재질이 지나치게 매끄럽고 두껍거나▶해상도가 떨어지며▶그림 등의 색상이 뚜렷하지 않은 화폐는 일단 의심해 보라고 권고한다.

손해용.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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