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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노벨상 수상 프랜시스 크릭 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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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크릭은 20세기의 찰스 다윈이다."(스비브 존스 교수.유니버시티칼리지오브런던)

"그가 분자생물학(유전공학)의 황금시대를 가져왔다."(메이 경.영국 학술원 회장)

"그의 무덤은 뉴턴과 다윈,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옆 자리에 마련돼야 한다."(매트 리들리 박사.'지놈'의 저자)

28일(현지 시간)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손턴병원에서 88세에 결장암으로 사망한 프랜시스 크릭은 이 정도의 찬사를 받을 만하다.

그가 51년 전 규명해낸 디옥시리보핵산(DNA) 구조는 이후 생명의 신비를 파헤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었다. 다윈이 신의 창조설을 뒤집었다면 크릭은 인간이 신을 대신해 생명을 다스릴 수 있는 시대의 문을 열었다.

1916년 잉글랜드 노샘프턴 태생으로 런던 유니버시티칼리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36세의 크릭은 53년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연구소에서 24세인 제임스 웟슨과 함께 DNA 이중나선형 구조를 발견했다. 이 공로로 그는 62년 웟슨 그리고 이들의 연구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던 모리스 윌킨스와 함께 노벨상을 받았다.

크릭과 웟슨은 생명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DNA의 구조와 그것이 어떻게 유전 정보를 담아 전달하는지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해냈다.

그들은 유전 정보를 간직한 DNA 분자가 이중 나선 형태로 꼬여 있음을 밝혀냈다. 마치 휘어져 감겨 올라가는 긴 사다리처럼 생긴 구조물에 4가지 질소염기(아데닌.티민.시토신.구아닌)가 가로막대기처럼 죽 꽂혀있는 모양이다. 4가지 질소염기는 서로 짝을 짓고 있다. 이 결합은 쉽게 갈라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체 DNA 가닥은 분열이 가능하다. 지퍼를 내리면 맞물린 이가 벌어지듯 효소가 DNA 가닥을 두 쪽으로 길게 갈라낸다. 갈라져나온 가닥이 다른 짝을 만나 새로운 이중 나선을 만드는 과정이 복제다. 이 과정에서 특정 염기가 빠지거나 잘못 복제되면 돌연변이가 생긴다. 이들의 발견으로 인간이 DNA를 조작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들의 발견은 상당기간 그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노벨상 수상을 결정한 심사위원들조차 "중요한 연구이긴 하지만 당분간 전혀 쓸모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들의 발견이 끼친 영향은 모든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발견은 생명공학산업의 기초가 됐고 과학자들은 이를 이용해 큰 토마토를 만들고, 의사들은 유전자치료법을 연구하고, 경찰은 DNA 증거로 범죄를 해결한다.

크릭은 노벨상 수상 후 활발한 사회활동을 한 웟슨과 달리 외부에 드러나길 싫어했다. "생각할 시간을 빼앗기기 싫어서"라는 이유였다. 77년 미국 소크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그는 실험보다 독서와 사색에 열심이었다. 웟슨은 뉴욕의 연구실에서 "불가사의할 정도의 지적 능력,그리고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그의 친절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크릭은 천재로서는 드물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신사였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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