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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기 회고전]'한국적 비디오아트'흐름 조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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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백남준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69년 미국에서 샬롯데 무어맨과의 퍼포먼스를 통해 비디오 아트를 예술 장르로 편입시킨 선구자인만큼 백남준이라는 존재는 가히 독보적이다.

이런 세계적 거인과 거의 동시대인 70년대에 국내에서도 자생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비디오 아티스트가 있다.

현대미술의 변방 한국, 그 중심부도 아닌 대구에 터를 잡아 작업하는 박현기 (56) 씨. 한국 비디오 아트 개척자로서 국내외에서 보여준 여러 활동과 공로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반인들에게는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온갖 실험적인 발상의 실행이 가능한 서구 미술계에서 영상매체 기술을 맘껏 이용할 수 있었던 백남준과는 달리, 박현기는 비디오는 커녕 컬러TV조차 없던 시기에 실험적인 작가정신만으로 국내 비디오 아트의 발전을 주도해왔다.

서구의 비디오 아트와는 또 다른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이룬 국내파 박현기의 회고전 '박현기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1977 - 1998' 이 16일까지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02 - 760 - 4602.

이 전시는 78년 첫 선을 보인 자연 그대로의 돌덩어리들과 TV 모니터를 한데 쌓아올린 '비디오 돌탑' 작업에서부터 비디오 프로젝트를 이용해 다양한 이미지를 투사시키는 근작에 이르는 작품세계 변화를 한자리에서 보여주고 있다.

미술평론가 김홍희씨가 "박현기의 비디오 작업은 한국적 비디오 아트의 한가지 전형을 제시한다" 고 평한 것처럼, 그는 자연과 정신의 조화를 중시하는 동양의 선 (禪) 사상과 같은 비서구적 세계를 TV에 담아낸다.

서구의 비디오 아트는 발전하는 첨단기술에 발맞추어 매체 자체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지만 박씨의 작업은 다르다.

비디오 자체에 매료되기 보다는 돌덩어리.나무 등 자연 소재와 마찬가지로 TV모니터 역시 예술세계 구현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바라본다.

이런 접근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에는 항상 자연과 문명, 전통과 현대, 서구와 동양이 서로 교차한다.

홍익대 회화과를 수료하고 다시 건축을 전공한 박씨는 79년 제15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80년 제11회 파리 비엔날레 등 국제전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경주 선재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갖기도 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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