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3000만원 털어 4시간 뒤 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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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충북 청원군 현도면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죽암휴게소에서 현금 3000만원이 든 돈가방을 훔친 외국인 용의자들이 범행 4시간 만에 출국한, 영화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일 오후 3시20분. 현금수송 차량 보안요원 2명이 돈을 채워 넣기 위해 현금지급기를 여는 순간 외국인 2명이 지급기 앞에 있던 돈가방을 들고 자신들이 몰고 온 승용차를 타고 도주했다. 목격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경찰이 승용차를 조회한 결과 페루 국적의 로드리게스(51)·오스카(54)가 렌터카 업체에서 빌린 것으로 확인됐다.

청주 흥덕경찰서는 21일 “수사 결과 로드리게스 등 용의자 2명이 20일 오후 7시30분쯤 인천국제공항에서 태국 방콕행 비행기편을 타고 출국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돈가방을 훔친 지 4시간 만에 출국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이 훔쳐간 현금이나 승용차는 발견되지 않았고 도주 경로도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 100만원짜리 돈다발 30개가 든 가방을 갖고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범인들이 현금을 모두 해외로 갖고 나갔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때문에 경찰은 이들이 훔친 돈을 미리 준비해둔 계좌로 송금했거나 공범에게 건네는 등의 방식으로 처분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환(換)치기’ 수법으로 국내 환치기 조직에 돈을 넘기고 출국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경찰은 한국말이 유창한 이들이 지난 10일 관광비자를 이용해 입국하기 이전부터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죽암휴게소에서 인천공항까지 2시간 이상 걸리고 출국 수속시간 등을 고려할 때 정교하게 해외 도피를 계획하지 않았다면 범행 4시간 만에 출국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찰이 렌터카를 통해 파악한 이들의 인적사항이 가짜일 수 있다는 점이다. 출입국 기록에는 두 사람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어 여권이 위조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하지만 경찰은 여권이 위조됐는지를 밝히지 못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도주 차량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고 진짜 범인이 로드리게스인지도 확인이 안 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인터폴에 이들의 신원 파악을 요청해 놓고 있다.

청주=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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