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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웰빙] 입안 가득 곰삭은 맛 그리워라 내 고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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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떠난 청년이 백발이 되었다. 바뀌지 않은 입맛은 그리움으로 복받쳐 온다. 인사동에서 강원용 목사와 함께. 권혁재 전문기자

강원용 목사의 고향은 함경남도 이원군 다보골이다. 보배가 많은 곳이라는 지명과는 달리 중중첩첩 산뿐인 곳이었다. 끼니 때우기도 벅찼다. 함경도는 그 험한 지형 때문에 늘 개발이 뒤처졌다. 그러니 80여년 전의 사정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5리쯤 걸으면 바다가 펼쳐졌다.

열여덟에 고향을 떠났지만 지금도 눈만 감으면 그 푸른 바다가 발끝을 적실 듯 다가온다. 무릎 높이에서 찰랑대는 바다가 해안가에서 2㎞나 뻗어나갔다. 물이 맑아 물고기들이 들여다 보였다. 해안가에는 붉은 해당화가 피어 있었다. 바위 틈새를 뒤져 섭조개를 따 죽을 끓였다. 내장이 우러난 국물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고향을 떠난 후로는 섭조개 맛을 본 적이 없다. 흔히 속초 사람들이 홍합을 섭이라 부르는데 모습은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라 한다. 섭은 이북으로 올라갈수록 조갯살이 굵어진다.

인사동의 툇마루집에서 만난 강 목사는 대뜸 음식에 관해서라면 정말 할 말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1953년 36세가 되기 전까지는 영양가 있는 것을 먹어본 적이 없었어요."

강 목사에게는 늘 가난과 고학이 따라다녔다. 2교시 무렵이면 교실 창밖이 노랗게 멀어졌다. 체육 시간은 면제받기 일쑤였다. 그 당시 강 목사와 더불어 고학하던 이가 여덟명이었는데 영양결핍으로 인한 병으로 모두 유명을 달리하고 강 목사만 살아남았다. 먹지 못해 입속은 백태가 끼고 헐어 피가 묻어났다. 10리 밖에 도시랄 것도 없는 도시가 있었다. 나무땔감 장사를 해 돈을 쥐는 날이면 값싼 털게를 사다 솥에 쪄 먹었다. 그 맛이 달디 달았다.

결혼 후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세살배기 아들이 고사리손을 쥐고 기도를 하고 있어 들어보니 밥 좀 달라는 기도였다. 서른여섯, 미국 유학길에 올라서야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50년대 미국에는 한국음식점이 전무했다. 미국인들은 닭은 다리만 먹고 몸통은 버렸다. 쇠꼬리도 마찬가지였다. 버린 고기를 싼 값에 구해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었다.

고향을 떠난 이후로 강 목사는 가자미 식해를 맛보지 못했다. 가자미 식해란 말에 덥석 한 젓가락을 떴을 뿐이다. 언제부턴가 강 목사의 목은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넘기지 못한다. 나이 탓이란다. 생각보다 간이 심심하다. 좀 짠 듯한 음식이 익숙한 이들은 싱거워 소금을 찾을 정도다. 함경도 음식은 마늘과 고춧가루를 듬뿍 써서 강한 맛이 나지만 짜지 않다. 한여름에도 덥지 않은 함경도의 기후와 관련이 있다. 간이 심심해도 음식이 잘 상하지 않을 뿐더러 폭염이 계속되지 않으니 염분 섭취를 적당히 해도 될 것이다.

가끔 음료인 '식혜'와 혼동되기도 하는 '식해'는 생선과 곡식을 버무린 젓갈류인데 아직도 북한에서는 '식혜'라고 표기한다. 가자미.명태.도루묵.횟대와 같은 살이 탄탄한 한류성 생선을 재료로 쓴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가자미 식해다. 반찬과 술안주, 함흥냉면의 고명으로 얹기도 하는 가자미 식해는 가자미를 통째로 삭히는 것부터 시작된다. 지에밥으로 되직하게 지은 메조와 갖은 양념을 넣고 삭힌 후 채썬 무를 넣고 버무린다.

뼈째 씹히는 가자미 맛이 고소하고 메조 알알이 입안에서 돌아다닌다. 삭혔는데도 메조알은 탄력이 있다. 지금은 냉면처럼 제철이라는 것이 없어졌지만 가자미 식해 또한 겨울 음식으로 적당하다. 기온이 내려가면 속은 뜨거워지는데 메조의 찬 성질이 열을 가라앉힌다는 것이다.

밥 한 그릇을 이렇듯 맛있게 드시는 분을 본 적이 없다. 강 목사는 식사 중간중간 "맛있다"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먹을거리가 넘쳐나 내다버린 음식 쓰레기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서는 끼니 때우는 것도 힘들어 굶주린다. 한 끼 식사를 감사하고 맛있게 먹는 것. 그것이 강 목사의 음식 철학인 듯하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실 때까지도 강 목사의 고향 이야기는 이어진다. "그 맛이 아닌데…. 고향에서는 가자미를 크게 써는데…." 실향민들이 남쪽에 북한 음식점을 내는데 조리 방법이며 재료를 똑같이 해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개울 하나만 건너면 그 맛이 달라지니 참 이상하단다. 강 목사의 아쉬움 속에 고향의 그리움이 흠씬 묻어난다. 고향을 떠난 지 70년이 가까워 온다. 오랜만에 맛본 가자미 식해, 고향의 그리움만 부추긴 모양이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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