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의 FTA 공략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23호 35면

한국과 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 최종 합의안이 2년여 만에 타결됐다. 우리나라는 2002년 칠레를 시작으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싱가포르·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등과 FTA 협상을 타결해 현재 발효되고 있다. 2년 전 체결된 한·미 FTA는 의회 비준을 기다리고 있고 올 초엔 인도와의 협상을 타결해 정식 서명을 앞두고 있다. 우리 정부는 교역 확대와 세계 주요국을 아우르는 ‘글로벌 FTA 허브’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주요 경제권과의 FTA 협상이 늘어나면서 언론과 연구기관들은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공산품과 농·수·축산품은 물론이고 제조업 안에서도 업종별로, 완제품·부품소재 등 생산단계별로 FTA 타결에 따른 희비가 엇갈린다. 국내 연구기관들은 한·EU FTA로는 장·단기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3%, 한·미 FTA 체결로는 향후 10년간 GDP의 6% 증가 효과를 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FTA 협상의 득실 및 영향에 대한 평가가 자동차·전자 등 제조업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점이다. FTA는 파급 효과를 계량화하기 어려운 금융 분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금융 부문을 포함한 서비스 부문 전체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를 보면 지난해 한 해 상품 수지는 59억9000만 달러의 흑자를 보았으나 서비스 수지는 이보다 세 배 가까운 167억3000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 특히 서비스 분야의 적자는 EU와 미국에 집중돼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금융 부문에서의 FTA 협상 결과는 그간 우리가 지켜온 금융개방 계획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미 FTA의 경우 국경 간 거래 부문 개방은 보험 등 일부 금융 부수서비스에 국한됐고, 일정 조건하에서의 신(新)금융서비스 허용, 공정경쟁 환경 조성, 금융감독 규제의 투명성 강화 등에 합의했다. 또 단기 세이프가드도 관철시켜 전체적으로 개방 확대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한·EU FTA도 구체적인 협상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퇴직연금과 화재보험시장 개방 등 일부를 빼고는 한·미 FTA와 비슷한 수준에서 협상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중·일 등 다른 주요국과의 FTA 협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 부문 협상 시 철저한 대비책과 함께 세 가지 부분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 필요하다. 먼저 선진국과의 협상 시 금융 부문의 발전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개방을 확대하되 우리 실정에 맞는 적절한 방어전략을 펼쳐야 한다.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인 금융 부문의 경우 무리한 양보를 할 경우 자칫 시장이 빠르게 잠식당하고 단기적인 자본이동 증가 등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이 확대될 수 있다.

둘째, 개도국과의 협상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공격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의 선진국 진출이 쉽지 않고 국내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개도국은 우리 금융회사들의 활동영역 확대를 위한 발판이자 선진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두 가지가 경기장에서의 ‘전술’이라면 세 번째는 경기 전후에 필요한 ‘기초체력 강화’라고 말할 수 있다. FTA 협상을 계기로 그간 정비가 미비했던 금융제도의 개선과 개혁, 선진금융 노하우의 습득, 다양한 금융수요에 맞는 전문인력 양성 등을 통해 경제구조 선진화에 걸맞은 내실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금융 부문 FTA 협상의 이해득실은 1차적으로 이에 대비하는 금융회사와 관련 당국의 노력에 달려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국민의 힘에 따라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금융개방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FTA 협상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금융산업에 대한 성원과 지지, 냉철한 비판, 건전한 의견 개진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