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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BOOK]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이 남긴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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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운명의 날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에코의 서재
256쪽, 1만2800원

책은 1755년 11월 1일 모든 가톨릭 성인의 축일인 만성절 아침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을 덮친 대지진을 조명했다. 그런데 단순한 재난보고서가 아니라 흥미로운 지성사 관련 책으로 읽힌다. 지진의 사회적 문화적 영향에 방점을 찍은 내용 덕이다.

3분 간격으로 발생한 두 번의 지진과 이어진 세 차례의 해일, 대화재는 800년 역사를 자랑하던 리스본을 폐허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적어도 2만5000명이 사망한 대참사였다. 당시 리스본에는 40여 곳의 성당이 있었고 인구 10%가 수도사였다. 그런데도 성당이 무너지고 신부와 신자들이 무참히 숨졌으니 ‘신의 섭리’에 대한 믿음 대신 인간의 자유의지와 과학적 탐구정신이 자리할 수밖에. 지진학 연구와 국제 재난구호원조도 리스본 대지진을 계기로 시작됐다. 책은 볼테르와 루소, 칸트 등을 중심으로 이같은 유럽의 계몽주의가 꽃피우는 과정도 두루 보여준다.

이와 함께 “죽은 자는 묻어주고 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는 모토로 시작된 카르발류 총리의 리스본 복구 사업, 그 와중에도 복구사업에 참여하기보다 회개와 기도를 요구한 예수회의 맹신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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