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부유세 논란 시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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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이 부유세 논란에 휩싸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건강보험 확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려 하자 감세를 모토로 삼는 공화당이 반발하고 있다.

미 상원 보건·의료·노동·연금위원회는 15일(현지시간) 거의 모든 미국인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확대하는 내용의 건강보험 법안을 13대 10으로 통과시켰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찬성한 반면, 공화당 의원들은 모두 반대했다. 이 법안은 앞으로 상원 재무위에서 통과돼야 본회의에 상정된다. 하원도 비슷한 법안을 심의하고 있어 상·하원이 단일안을 마련한 뒤 대통령이 서명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부자 세금 최대 5.4% 늘려=상원 법안은 25명 이상 근로자를 둔 기업에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긴 기업에는 근로자당 750달러의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 오바마는 건강보험법안 통과를 환영했다. 그는 이날 “부유한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돈을 절약하는 효과를 주는 시스템 개혁을 지원하기 위해 약간 더 지불할 수 있다고 본다”며 “비싼 약을 복제약으로 대체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원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이 건강보험 개혁을 위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는 법안을 상정한 상태다. 법안에 따르면 연소득 35만 달러 소득자의 세금 부담이 1% 더 늘어나며, 100만 달러 이상 소득자는 최대 5.4%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민주당은 부자에 대한 증세로 앞으로 10년간 5440억 달러를 더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주기 위해 필요한 재원(6150억 달러)의 90%가량을 충당할 수 있다.

◆공화당·재계 반발=공화당의 에릭 켄터 상원의원은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중소기업의 부담을 늘리게 될 것”이라고 법안에 반대했다. 같은 당의 마이클 엔지 상원의원은 “이 법안은 수조 달러의 비용이 들어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안에 점수를 매기면 F”라고 말했다. 재계도 반발했다. 토머스 도너휴 미 상공회의소 회장은 “이 법안의 진정한 피해자는 미국의 중소기업”이라며 “위대한 자유시장 국가인 미국이 언제부터 성공한 사람에게 벌을 주게 됐는가”라고 반문했다. 전미자영업연맹은 “기업에 건강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건 징벌적인 조치”라고 반발했다.

◆낙후된 미 건강보험=오바마는 취임 이후 세계 최고 수준의 건강보험료 부담에도 건강의 질은 낙후된 미 건강보험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은 건강보험에 관한 한 후진국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높은 보험료로 인해 인구의 15%인 4600만 명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비 부담으로 퇴직 이후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과다한 근로자 보험료 지출로 미 기업의 경쟁력도 나빠진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미 자동차 업체들은 전·현직 근로자들의 건강보험료 부담으로 외국 자동차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졌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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