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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고고학 탐험]1.'리프트 밸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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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아침저녁으로 삽상한 가을의 문턱에서 태고로의 먼 시간여행을 떠난다.

바로 아프리카고고학 탐험. 안내자는 한양대 배기동 교수. 그는 1년동안 동아프리카에 머물며 인류의 탄생과 초기 진화의 비밀을 뒤지고 최근 돌아왔다.

지금부터 국내언론에 처음 소개되는 세계 고고학의 최대 보고 (寶庫) 아프리카 고고학 현장으로 한발한발 들어가보자. 누구나 고고학자가 된 기분으로, 약간은 흥분하면서.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우간다로 향하는 도로를 타고 약 30분 정도 언덕을 오르면 도로에서 아득히 아래로 보랏빛 안개 속에 산과 평원이 펼쳐지게 된다.

동아프리카 '리프트 밸리' 의 모서리에 서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대륙은 약 1천7백만년 전에 유라시아대륙과 붙어 있었지만 이제는 이 검은 대륙의 동쪽 모서리가 서서히 떨어져 나오고 있다.

리프트 밸리는 이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며 먼 훗날에는 바다가 될 것이다.

계곡이라지만 엄청나게 넓어서 반대편 언덕은 보이지 않는다.

옛날 이디오피아의 일부였던 홍해에 면한 지부티공화국과 에리트리아에서 시작하여 이디오피아.케냐.탄자니아를 거쳐 잠비아와 탄자니아의 경계인 잠베시강 (江)에 이르는 수천㎞의 길이와 수백㎞의 폭을 가진 계곡이다.

투르카나나 탕가니카 호수같이 엄청나게 큰 호수들이 리프트 계곡을 따라 분포하고 있어서 누구나 쉽게 찢어지는 아프리카의 흔적을 지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리프트 밸리에는 숨막히는 열대사막기후가 있는가 하면 킬리만자로산의 꼭대기처럼 만년설도 있다.

이 중에서 우리에게 동물의 왕국으로 잘 알려진 세렝게티 공원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키 큰 풀들이 끝없는 지평선을 이루고 있는 사바나와 나무초원은 야생동물들의 보금자리일 뿐 아니라 인류의 탄생과 진화가 이루어진 곳인 것이다.

끝없는 지평선을 만들고 있는 사바나의 초원과 나무초원 그리고 사막들, 그리고 아득히 그림자처럼 보랏빛을 하고 앉아 있는 삼각형의 산들은 고독감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지만 리프트 밸리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침식으로 드러난 거의 수직으로 수십m에 이르는 옛날 지층들은 금새라도 사람화석이 발견될 것 같은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그 유명한 올두바이 계곡도 바로 그러한 유적이다.

그리고 그 인류진화의 흔적은 이 리프트 밸리의 전역에 걸쳐서 발견되고 있다.

금년에도 이탈리아 팀에 의해서 새로운 인류화석이 에리트리아에서 발견되어 인류의 역사를 더 오래된 과거로 끌어올리고 있다.

분명 이 리프트 밸리는 인간의 탄생과 초기 진화의 비밀을 밝혀줄 고고학적인 증거들이 '노다지' 로 묻혀 있는 곳이며 고고학자의 꿈을 이루게 해주는 원더랜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리프트 밸리가 선사고고학의 보고 (寶庫)가 된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 지역에 인류와 가장 가까운 유인원인 침팬지와 고릴라가 아직도 살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지역이며 이 밸리가 형성된 이래 수백만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주위로부터 운반되어와 쌓인 퇴적물이 남아있는 지역이다.

이 퇴적물 속에는 많은 인류와 동물화석들과 구석기유물들이 남아 있다.

또한 지각변동, 즉 대륙이 찢어짐으로써 활발하게 활동하였던 화산은 이 퇴적물의 정확한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하여 인류기원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진화와 고고학적인 사건들의 연대를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 지역의 화산활동은 탄자니아 라에톨리에선 거의 3백70만년전 사람의 발자국을 보존한 경우도 있어 당시를 영화의 한 장면같이 복원할 수 있었다.

20세기초 영국인 리키 부부에 의해 발견된 탄자니아 올두바이 유적들은 리프트 밸리의 한가운데에 있다.

거대한 응고롱고로 화산분화구를 내려와서 나무가 듬성듬성 있는 사바나 초원을 가로질러 야생동물의 왕국인 세렝게티 쪽으로 가면 홀연히 지진으로 금새 갈라진 듯한 올두바이 계곡이 나타난다.

계곡의 바닥까지는 거의 1백m 깊이인데 지난 2백만년동안 쌓여진 층이며 이 긴 세월동안 이 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 층이 깎여나갈 때마다 새로운 사실들을 토해내고 있다.

지난 6월에 최고 2백50만년전 인류인 진잔트로프스 유적을 발견한 지점을 방문하였을 때는 바로전 엘니뇨로 인한 폭우로 새로이 말의 머리화석이 리키의 발굴지점에서 드러나 있어 우리 일행을 흥분시켰다.

올두바이 유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관광객은 혼자서 계곡의 바닥으로 갈 수 없다' 는 경고를 붙여두고 있는데 이는 언제 어디서 새로운 화석과 유물이 발견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키 부부 이래 꿈에 부푼 인류학자와 고고학자들이 사바나라고는 하지만 사막과 같이 견디기 어려운 이 지역들을 조사해 온 것이다.

약 4백만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인 루시를 발견하여 부와 명성을 이룩한 도날드 조핸슨도 이런 점에서 선사고고학의 인디애나 존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리프트 밸리의 유적들에 들어서면 엄청나게 먼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착각을 하게 되고 누구나 고고학자가 되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리프트 계곡에 살고 있는 종족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머리 속에 고고학 유적과 유물에 대한 새로운 설명들이 샘솟듯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동아프리카의 리프트 밸리, 이곳은 진정 고고학자의 '꿈의 필드' 이다.

배기동(한양대 교수.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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