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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기막힌 사내들' 풍자·해학 넘치는 블랙코미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지금 충무로는 '신인감독들의 천국' 이다.

유명 감독의 연출부에서 허드렛 일부터 차근차근 수련을 쌓은 다음이 아니라면 좀 체 기회가 돌아오지 않던 감독이라는 자리가 외국서 공부하고 돌아왔거나 단편영화로 이름을 얻은 젊은이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대충 눈어름을 하더라도 한 해 20명 정도는 신인들이다.

그럼에도 충무로 제작자들은 '인물난' 을 호소한다.

막상 믿고 맡길 만한 깜냥이 되는 신인들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조용한 가족' 의 김지운 감독에 이어 연극계에서 또 한명의 패기넘친 신인이 건너왔다.

올해 27세의 장진 감독. 95년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된 이후 '허탕' '택시드리벌' 등 다수의 작품을 연출한 그는 기발한 착상과 재치로 연극판에서는 이미 '명물' 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만큼 첫 영화 나들이에 거는 기대수준들이 높았다.

'기막힌 사내들' 은 장 감독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이 배어 있어 일단 믿음직스럽다.

'서울시의 교통난을 해결하라'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라' '독도를 사수하자' 며 굵직굵직한 사회문제를 이슈로 내걸며 자살을 감행하는 '추락' (연극배우 출신인 신하균) , 운 나쁘게도 항상 살인 사건 현장만 지나다닌 관계로 매번 용의자로 지목돼 검찰에 불려다디는 '불행한 죄수' (손현주) , 이들은 막 감방에서 퇴소한 '덕배' (최종원) 와 그의 단짝인 국밥집 식당주인 '달수' (양택조)에게 우연히 엮여 '딱 한번' 의 성공을 위해 한탕을 계획한다.

한편 한여름 서울 시내에서는 연속살인 사건이 일어나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혀있다.

4명의 피해자가 모두 국회의원이라는 점에 수사팀은 초점을 맞추지만 번번이 헛다리만 짚는다.

'전봇대의 살인' 으로 불리는 이 사건의 범인은 얼굴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전화 통화를 통해서만 관객들에게 실체를 슬쩍 내비칠 뿐이다.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두 사람이 작당했다는 것외엔 아무런 단서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기막힌 사내들' 은 최근의 코미디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괴하고 오싹한, 블랙 유머가 돋보이는 영화다.

이 영화의 매력은 한국사회의 문제를 건드리면서도 풍자를 전혀 의도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능청스럽게 둘러대는 통에 표면보다는 심층에서 웃기는 방식이락나 할까. 괜히 IMF라며 심금을 울리려고 작위적이거나 감상적이 되어 청승을 떨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전기충격 자살장치' 를 잘못 작동해 '진짜 실업자' 가 죽음을 맞고 또 그것을 언론이 '실업을 비관해 자살했다' 며 호들갑 떠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또 대머리들이 마스크를 하고 가두시위를 하는 장면은 5공화국의 최고집권자와 당시의 시위문화를 교접시켜 놓은 절묘한 설정이다.

경상도.전라도 사투리를 자막을 통해 표준말로 옮겨놓는 장치도 예상치 못한 영상효과를 거둔다.

하지만 보육원을 운영하는 덕배의 딸 (오연수) 과 옛사랑의 그리움에 묻혀사는 '반지낀 여인' (구혜진) 을 등장시킨 장면들에서는 감독이 하려는 얘기가 매끄럽게 전달되지 않는다.

또 장면들을 연결하는 편집에서의 미숙함은 앞으로 장 감독에게 남겨진 과제다.

"한국에서 영화한다는 것이, 아니 모든 창작에서 자본과 연류되어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제 저의 이야기는 한편에서는 자본의 획득과 비례되어 평가가 되어지겠군요" 라는 감독의 '어른스러운 분석' 이 그의 앞날을 주목하게 만든다.

22일 개봉.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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