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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8월 그리고 50년]오늘의 시각…외자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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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외자는 우리에게 영광도 줬고 고통도 줬다.

정부수립 선포식에서 이승만 (李承晩) 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외국의 경제원조" 라고 역설했다.

지난 2월 25일 취임연설 당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모습이 겹쳐지는 대목이다.

정부수립후 본격적인 정부 활동이 반영된 49회계연도의 본원 통화는 연평균 5.3%, 물가는 5.4%씩 증가했다.

45년 당시 4백39원 하던 금 한 돈쭝이 49년에는 7천9백28원으로 18배나 껑충 뛴 것이다.

미군정기인 46년초 '1달러 = 15원' 으로 출발한 환율은 47년 7월 50원으로 올라가 정부수립 직전까지 유지됐다.

당시 물가상승에 비하면 원화가 높게 평가된데다 국제통화기금 (IMF) 가입이 현안으로 떠올라 정부는 48년 10월 미국과 협의, 4백50대1로 공식환율을 결정했다.

이후 경제안정화와 수입대체 중심의 부흥론이 결합되면서 50년대까지 저환율 정책이 유지됐다.

국내에서 '외국의 경제원조' '외채' 라는 단어가 본격 등장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부터다.

45년부터 74년까지 원조액은 약 44억2천만달러. 이중 미국이 86%를 차지했고 일본은 65년 이후 주요 외자 제공국이 됐다.

일본은 대일 (對日) 청구권 자금으로 66년부터 10년간 무상공여 3억달러, 유상 재정차관 2억달러, 상업차관 3억달러를 제공했다.

63년 당시 외환보유고가 1억달러 선임을 감안한다면 외국 경제원조와 외자가 한국 경제 안정화와 부흥에 큰 비중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50년대 삼백 (三白 : 제분.제당.면방직) 산업은 원조와 외자 때문에 성장한 대표적 사례다.

인프라.에너지.철강 등 국내 기간산업 대부분이 60년대 외자로 건설된 것들이다.

월남.중동 특수 등으로 들어온 달러는 70년대 중화학공업화와 80년대 삼저 (三低) 호황의 모태가 됐다.

한국이 아시아 신흥공업국 (NICs) 으로 세계에 알려진 것도 80년대 이후부터였다.

물론 무상원조와 유상차관으로 들어온 외자를 우리 정부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상황은 많지 않았다.

50년대에는 한미합동경제위 (CEB)가 중심 역할을 했고 60년대에는 국제개발국 (AID) 한국지부격인 주한 미경제협조처 (USOM) 와 협의해야 했다.

미 원조와 차관 제공은 단순히 한국의 경제성장 지원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 대한 세계전략을 담고 있었다.

미국의 대한 (對韓) 경제정책은 57년부터 무상원조에서 유상차관으로 바뀌었고 60년대 이후엔 원조보다는 무역을 중시하면서 한국의 수출전략과 결합됐다.

60년대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에 따라 외자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정부는 국내자금의 부족분을 외자로 충당하고 가공무역을 통해 수출을 늘릴 수 있었다.

외자 분배권이 정부에 있었던 탓에 정부 주도적 성향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부 외국 학자는 한국이 직접투자보다 차관을 선호해 정부가 외국 자본을 적절히 통제, 국익보호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했지만 최근에는 부실경영에 대한 최소한의 감시기능도 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남는다.

정부주도 외자조달과 금융배분은 많은 부패와 비효율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외환을 배정받는 것 자체가 특혜가 되고 암시장에서 큰 차익을 남겼던 적도 있었다.

이미 67년께부터 외채상환 문제가 우려되기 시작했고 69년 세계은행의 피어슨 보고서도 이를 지적한 바 있다.

돌이켜 보면 단 50달러 외화지출도 대통령 결재를 받아야 했던 검약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역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중앙은행 외환보유고 실상도 모르고 준비없이 세계화만 외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97년말 대통령의 리더십은 완전히 마비됐고 국가의 모니터링 기능도 방치된 상태에서 외환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98년 6월말 현재 총외채 1천5백38억달러, 4인 가족 한 가구당 약 1만3천4백달러의 국제 빚쟁이가 된 것이다.

50, 60년대 냉전시대에는 한국이 수혜자 대우를 받았었지만 탈냉전 시대에는 세계화의 외압과 경쟁력만이 있을 뿐이다.

50년전 상황과 비교하면 외채부담이 늘었지만 그래도 지금이 나은 편이다.

현재 우리는 성공과 좌절을 다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형 경제성장 아래서 누적돼온 부정적 유산을 시급히 청산하고 세계가 경탄했던 긍정적 자산을 잘 활용한다면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

유상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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