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열린 백담사 '시인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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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누구의 눈물로도 녹지 않는 얼음장 길을/닳고 터진 알발로/뜨겁게 녹여가라신다/매웁고도 아린 향기 자오록한 꽃진 흘려서/자욱자욱 붉게붉게 뒤따르게 하라신다. " (유안진 '세한도 가는 길' 중)

내설악 깊은골 백담사에서 지난 7일부터 3박4일동안 만해 한용운의 혼을 시심 (詩心) 으로 되살리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제3회 만해시인학교가 열렸다.

시 전문지 '시와 시학' 과 만해사상실천선양회의 주최로 열린 이번 시인학교에는 시인.평론가.일반인 등 1백여명이 참가했다.

어려운 시절에 험한 비까지 내려 착찹한 심정으로 모인 문인과 일반인들은 자연스레 암울한 시절 영롱하게 빛났던 만해사상으로 귀의 (歸依) 했다.

시인 유안진교수 (서울대) 는 "매년 백담사에 나와 그의 사상을 흠모하며 토해낸 내 시는 얼음장처럼 매서운 길 알발로라도 인내하며 함께 나가자는 것" 이라며 시인학교에 참여한 감회를 들려준다.

시낭송대회.국악의 밤 등을 보내며 참가자들은 만해의 얼을 몸으로 시로 그리고 노래로 표현해 내면서 분위기를 돋웠고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고은 시인은 통일을 염원하는 '아리랑' 을 온몸으로 불러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또 작곡가 변규백씨는 만해의 시 '님의 침묵' 과 '사랑하는 까닭은' 에 현대음악에 범패를 곁들인 곡을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문학평론가 김재홍 (경희대) 교수는 "경제적 어려움이 짓누르고 게다가 억수같은 비까지 내려 더욱 척박해진 우리 마음들이 생명사상과 통일사상을 강조한 만해의 정신을 통찰해 볼 수만 있다면 어떤 위기도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일반 참가자 70여명의 시에 대한 열정도 뜨거웠다.

등단의 꿈을 꾸는 주부들, 이제 시심을 키워 나가는 청소년, 고위 공직자, 그리고 과수원을 가꾸는 농부까지, 참여자는 각양각색. 하지만 외로운 시심을 채우려는 마음은 한결같아 시인들로부터 배우는 시작법 강의시간은 진지한 열의로 가득했고 '만해' 와 '백담사' 가 시제로 나붙은 백일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솜씨를 보이기도 했다.

이번 시인학교에는 고은 시인을 비롯 민영.오세영.신달자.김종철.이성선.나태주.고재종.서정윤 시인 등과 문학평론가 김용직 (서울대명예교수).이숭원 (서울여대).김종회 (경희대) 교수등 30여명의 문단의 원로.중진들이 참여해 권위있는 시인학교로도 손색이 없었다.

또 행사를 후원하는 백담사도 지난해 11월 만해교육관을 지어 교육의 장을 마련해 주었으며 스님들의 따뜻한 배려도 참가자들의 시심을 더욱 돈독하게 해주었다.

백담사 =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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