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은 비법조인이 맡게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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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헌법재판관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간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헌법재판관의 다양화를 주장한 적은 있으나 헌재 소장이 이런 언급을 한 것은 처음이다.

이 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3명은 판사·검사·변호사가 아닌 다양한 직역에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소장을 포함한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은 판사 출신이고 1명은 검사 출신, 2명은 판사 경력이 있는 변호사 출신이다.

이 소장의 발언은 헌재가 올해 1월 국회의장 산하 헌법연구자문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와 맥락을 같이한다. 헌재는 개헌 논의를 진행 중인 헌법연구자문위의 요청을 받고 ‘재판관 3명 정도는 법관 이외의 전문가로 채울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헌재 노희범 공보관은 “법률심인 대법원과 달리 헌재는 정치·사회적 기능이 큰 사법기관이기 때문에 재판관 다양화를 통해 여러 가치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헌재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에선 정치학 전공자로 관련 분야 경력 10년 이상 보유자, 스페인에선 15년 이상 경력의 고위 공무원도 헌법재판관이 될 수 있다.

헌재는 또 국회 선출 3명, 대법원장 제청 3명을 포함해 대통령이 9명의 재판관을 임명하도록 돼 있는 현행 방식에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회에서 9명 모두를 선출하되 우리나라가 대통령 중심제 국가인 점을 고려해 대통령에게 이 중 3명에 대한 실질적 임명권을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대법원장 몫 3명을 국회로 넘기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논란이 예상된다. 헌재는 “국민이 직접 뽑은 국회가 헌법재판관을 선출하는 것이 가장 민주적이라는 게 핵심이지 대법원장 몫을 없애자는 취지가 아니다”면서도 “입법부나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과 달리 대법원장은 선출직이 아니기 때문에 민주적 정당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오석준 공보관은 “재판관 다양화에 공감하지만 국회에서 헌법재판관을 선출하면 여야의 의석수에 비례해 임명될 것”이라며 “소수자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가 희석되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과 헌재는 1988년 헌재 출범 이래 미묘한 신경전을 벌여 왔다. 대법원 내부에선 연방대법원에서 위헌 결정을 하는 미국의 예를 들며 헌재와의 통합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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