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피크 7신 - 정상도전 이틀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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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지치고 추위에 떨어서 교신이 힘듭니다. 눈을 녹여서 따뜻한 차 한 잔 마신 후 다시 무전하겠습니다.”

9일 오후 8시 30분(현지시간), 김형일(K2익스트림팀·41) 원정대장의 음성은 쇳소리에 가까웠다. 지친 목소리가 골든피크(7027m) 상단부, 6200m 비바크 지점에서 약 3km 떨어진 베이스캠프까지 무전을 통해 생생하게 들렸다. K2스팬틱 골든피크원정대(K2코리아·중앙일보 후원)는 이날 오전 7시, 첫번째 비바크 사이트를 나선 뒤 13시간만에 두번째 비바크 지점에 도달했다.

힘든 하루였다. 첫날 비바크 지점인 5700m에서 6000m까지는 비교적 수월했다. 이 구간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눈 사면이 이어졌다. 그러나 오전 11시 30분경, 흰 눈 사이사이로 검은 벽의 흔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6000m 지점은 골든피크 북서필라 상단부에 자리잡은 ‘블랙타워’의 초입이다. 너비 약 300m, 수직고도 약 700m의 이 검은 바위는 카라코람 히말라야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검은 바위'다. 블랙타워는 혹한과 혹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빙하에 의해 암질이 매우 연약해져 있어 등반하기에 무척 힘든 곳이다. 원정대는 눈과 얼음, 바스러지는 바위 등 혼합 등반이 시작되는 이 구간에서 현명한 루트 파인딩을 해야만 한다.

베이스캠프에서부터 컨디션이 가장 좋았던 민준영(36) 대원이 선등에 나섰다. 170cm, 57kg의 자그마한 체구지만 군살없는 몸에 15kg이 넘는 배낭을 매고 검은 바위를 향해 나섰다. 그러나 “얼음은 쉽게 부서지고, 검은 바위는 너무 퍼석퍼석해 크램폰(아이젠)이 제대로 박히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고 상황을 전했다.

1피치(로프 60m)를 오르는데 거의 2시간이 걸렸다. 오전 11시 30분 6000m에서 첫 피치를 시작해 오후 1시에 6040m에 도달한 뒤, 2시 30분경 6080m, 4시 30분 6120m, 6시 20분 6160m, 그리고 7시 40분이 돼서야 6200m 지점에 올랐다. 마지막 피치에서는 10m를 오르는 데 20~30분이 걸릴 정도였다.

민 대원은 이날 혼자서 5피치를 모두 선등했다. 바르푸 빙하를 비추던 석양이 완전히 물러날 즈음인 오후 8시 30분이 돼서야 원정대는 간신히 비바크 사이트를 마련할 수 있었다.

“대원들 모두 지쳐 있는 상태지만, 오늘밤 자고 나면 다시 등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세 대원 모두 고소 증세는 전혀 없습니다. 예정대로 내일 벽 상단부를 향해 나가겠습니다.”

마지막 교신, 김 대장의 목소리는 무척 지쳐 있었지만 짧게 끊어 뱉는 말투에는 힘이 남아 있었다.

10일부터는 블랙타워와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다. 수직고도 500m를 남겨놓고 있지만, 경사도 70도 이상의 난벽인만큼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원정대는 이 구간에서 꼬박 이틀간 사투를 벌여야 블랙타워 끝자락을 넘어 골든피크로 향하게 된다.

골든피크(파키스탄)=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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