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도우미] 잔금 날짜 어겼는데 해약사유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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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 이기형 변호사

Q : 아파트를 사면서 계약금과 중도금은 지급했으나 잔금기일에 잔금을 치르지 못했다. 매매계약서에 ‘매수인이 잔금을 치르지 못하면 계약은 자동해제되고 계약금은 몰수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잔금 납부 기일 이후에 잔금을 지급하고 소유권 이전등기를 하고 싶은데 가능한가.

A : 원칙적으로 상대방의 계약 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려면 먼저 상당한 기간을 정해 그 이행을 최고(상대방에게 일정한 행위를 할 것을 요구하는 의사의 통지)하고 그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않을 경우 별도로 계약 해제 의사를 표시해야 효력이 발생한다.(민법 제544조)

그런데 질문처럼 이행의 최고(催告)나 계약 해제 의사 표시 없이 계약 불이행의 사실만으로 계약 해제 효과가 나타나도록 약정하는 경우(실권특약)는 좀 다르다.

계약자유의 원칙상 이런 계약도 원칙적으로는 유효하지만 매수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항이라는 점에서 판례는 그 효력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판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수인의 잔금 지급 의무와 매도인의 소유권 이전 등기 의무는 동시 이행의 관계에 있으므로 매수인이 잔금지급을 지체하고 있는 것만으로 계약이 해제된다고 할 수 없고, 매도인이 잔금기일에 소유권 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매수인에게 알리는 등의 행위를 했는데도 매수인이 이행 지체에 빠지게 했을 때에 비로소 계약이 해제된다고 봐야 한다'고 본다.(대법원 98다 505판결 등)

질문의 경우 아파트를 판 사람이 질문자에게 잔금기일에 소유권 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부동산 매도용 인감증명서.인감도장.등기권리증 등)를 제공했어야 계약 해제의 효력이 나타난다. 만약 매매 대상 부동산에 가압류.가등기 등이 설정돼 있어 매도인이 잔금기일까지 이를 말소해주기로 했다면 말소에 필요한 서류도 함께 제공해야 한다.

매도인이 이런 서류를 주지 않았다면 매수인은 계약의 유효를 주장하면서 소유권 이전등기를 청구할 수 있다.

이때 잔금기일이 지나더라도 매수인은 잔금 지급 지연에 따른 지체 이자를 물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매수인은 잔금을 지체하더라도 계약을 지레 포기하지 않는 게 좋다.

중도금 지급 기일이 지난 뒤에 매도인이 일정 기간을 유예해주면서 '○○일까지 중도금을 주지 않으면 계약이 자동 해제된다'고 각서를 쓰는 경우 판례는 계약 해제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02-533-6868. <끝>

이기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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