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의 그린수기]9.매너 챙기는건 엄마 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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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번 JAL 빅애플 클래식 대회에서 나는 4라운드 합계 4오버파 2백88타로 공동 45위에 그쳤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연일 나를 따라다니며 성원을 보내주신 뉴욕 일원의 교민들에게 죄송스럽기 짝이 없다.

골프란 원래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지만 이번에는 그야말로 대책이 없을 정도로 게임이 풀리지 않았다. '주범' 은 퍼팅이었다.

지난번 제이미 파 크로거 대회 때는 퍼팅한 볼이 마치 쇠붙이가 자석에 끌리듯 저절로 홀 속으로 빨려들어가더니 이번에는 완전히 '아니올시다' 였다.

퍼팅이 흔들리면 당장 아이언샷이 영향을 받는다.

핀에 바짝 붙여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무리한 샷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무리한 샷은 벙커에 빠지거나 러프에 떨어지는 등의 '재난' 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게임이 안 풀리면 누구나 화가 나게 마련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치밀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느라 무진 애를 썼다.

내딴에는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도 그게 잘 안됐던 모양이다.

라운드가 끝나고 식사하는 자리에서 당장 엄마로부터 꾸중을 들었다.

"얘, 게임 안 풀린다고 성질 내지마. "

"내가 뭘? 아무런 내색도 안하는데. " "얼씨구, 내색을 안해? 입 뾰족 내밀고 퍼터로 신발을 톡톡 내리친 건 뭐야? 다른 선수의 퍼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린을 휙 떠나버리고…. 관중이 그런 거 모를 줄 알아?" 가슴이 찔끔한다. 엄마는 말씀을 계속하신다.

평소에 별로 말수가 없는 엄마지만 골프 매너에 관한 한 열변을 마다하지 않는 분이다.

이럴 때의 엄마는 좀 무섭다.

"너, 타이거 우즈가 경기 안풀린다고 인상쓰면서 골프채 내던지는 거 봤지. 어린 사람이 그런 행동하는 게 보기 좋아? 그런데, 조지아텍에 다닌다는 아마추어 선수, 이름이 뭐더라, 걔는 골프가 잘되든 안되든 항상 싱긋이 웃잖니, 얼마나 보기 좋아. 너 퍼터로 신발 치는 버릇 고쳐. " 내가 너무 몰리는 거 같았던지, 옆에 있던 아빠 친구 한 분이 슬쩍 거들었다.

"미국 같은 프로 스포츠의 왕국에서는 테니스의 매켄로나 농구의 로드맨 같은 악동 스타일도 또 그런 대로 수요가 있지요. 팬들의 입장에서는 항상 수도 (修道) 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보다 때로는 성질도 부리고 하는 게 덜 지루할 수도 있고요…. " "덜 지루하게 만드는 일은 미국선수들이 맡으라고 해요.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세리가 버릇 없고, 매너 나쁜 선수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요. "

엄마가 정색을 하자 그분은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 라며 슬그머니 후퇴했다. 나는 어려서 아빠에게 골프를 배울 때부터 진정한 챔피언의 자세에 대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다.

아빠는 "싸움이건 운동이건 불필요한 동작이 많다는 얘기는 불안하거나 두렵다는 얘기" 라며 "특히 화를 낸다는 건 이미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음을 인정하는 것" 이라고 강조해왔다.

엄마.아빠의 가르침 덕택인지 나는 지금까지는 매너가 나쁘다는 말은 듣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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