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기업은 지배구조 재편 중] 1. "바꿔도 기업가 정신은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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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모든 나라와 기업에 획일적인 지배구조를 강요하기보다는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하면서 스스로 최선의 형태를 갖춰 가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산하 기업법위원회의 야프 빈터(사진)위원장은 회계 부정과 경영진의 독단 등 일부 기업의 폐해를 줄이면서도 기업가 정신을 꺾지 않는 기업 지배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회사법 전문 변호사이자 로테르담대학의 국제회사법 교수인 그는 '빈터 그룹'으로 불리는 일단의 교수.연구자들을 이끌고 있는 유럽 최고의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다.

-미국과 유럽에서 최근 정부가 기업 지배구조에 대해 개입하는 이유는.

"대기업의 회계부정 사건이 잇따르며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엔론 스캔들 이후 유럽에서도 회계부정과 경영진의 비리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유럽도 미국처럼 엄격한 법을 마련해 지배구조를 개선하나.

"그렇지 않다. 큰 틀에서 봐야 한다. 아무리 엄격한 법을 만들어도 부정한 경영행위를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다. 지배구조 개선의 주목적은 이사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주주가 제대로 대우받도록 하는 것이다."

-위원회가 마련 중인 지배구조안은 모든 유럽 국가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가.

"가이드 라인일 뿐이다. 모든 나라에 한가지 기업 지배구조를 강요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전통과 사회.문화적 여건을 반영해 기업이 선택하되,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만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자유로운 미국에 비해 유럽은 관련 규제가 많아 '유럽 요새'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

"유럽에만 요새라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많은 미국 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방어장치를 두고 있다. 경영권을 위협받을 때 제3자에게 헐값에 주식을 발행해 주식 가치를 떨어뜨리는 독약처방(Poison Pill)이 대표적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선 자본의 국적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유럽에서도 같은 논란이 있다. 외국 자본의 진출에 따른 경쟁은 기업을 효율화하고 투자자들에게 보다 많은 성과를 되돌려준다. 하지만 자국 산업을 외국에 내주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어느 정부나 마찬가지다. 장벽을 없애는 게 바람직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암스테르담=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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