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돋보기] 법원 “입주권 줬어도 이사비 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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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도시계획사업에 의해 철거되는 건물의 세입자들이 주거이전비를 청구하면 지방자치단체의 결정과 상관없이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은 서울시 용강동 등의 시범아파트 세입자 50명이 “임대주택 입주권을 줬다는 이유로 주거이전비 지급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며 서울특별시를 상대로 낸 소송(주거이전비 등 지급 청구)에서 “서울시는 원고들에게 700만~16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사건은 2007년 서울시가 마포구 용강동과 종로구 옥인동의 시범아파트 자리에 녹지를 조성하는 도시계획 사업을 시행하면서 시작됐다. 서울시는 이 아파트에 3개월 이상 거주한 세입자들에게 ‘임대주택 특별공급권 또는 주거이전비를 선택적으로 부여하겠다’고 공고했다.

그러나 임대주택 입주권을 받은 세입자들은 “임대주택 입주권을 줬다고 하더라도 주거이전비는 보장해줘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철거민 측은 2007년 4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의 시행규칙 중 ‘다른 법령 등에 의해 임대주택 입주권을 받은 세입자는 주거이전비를 받을 수 없다’는 단서 규정이 삭제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서울시는 법 개정 1년 뒤인 지난해 4월부터 철거민에게 임대주택 입주권과 주거이전비를 모두 보상하는 규칙을 정했다. 서울시는 “2008년 4월 이전에는 의무사항이 아니었다”고 맞섰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판결문에서 “서울시가 당시 이주대책 공고를 통해 임대주택 입주권 또는 주거이전비를 선택적으로 부여하겠다는 결정을 알렸지만, 원고들이 공익사업법에 근거한 권리에 따라 주거이전비 청구 소송을 낸 이상 서울시가 이를 거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철거민들이 주거이전비 청구권을 행사했음에도 임대주택 특별공급권을 취득할 수 있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서울시 측은 “이번 판결은 2007년 당시 상황에서 세입자들에게 입주권과 주거이전비를 모두 보장하라는 취지는 아니다. 새 규칙이 시행되기 이전이었으므로 주거이전비를 지급받으면 임대주택 입주권은 취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철거민들이 또다시 법정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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