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 조사단 고은의 詩]금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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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방북조사단의 일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고은 시인이 5일동안의 금강산 답사를 마치고 현지에서 벅찬 감격을 노래한 시를 보내왔다.

고은 시인의 시 '금강산' 은 금강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는 눈으로 남과 북의 진정한 화해를 이루어가자는 절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

금강산을 바라보는 눈으로

우리 서로를 바라보자

금강산 1만2천봉을

나도 모르게

너도 모르게 바라보는 눈으로

우리 서로를 바라보자

저 봉우리마다

수려한 얼굴들

저 골짜기마다

그윽히 마음담겨

우리 서로를 바라보자

금강산 1만2천봉을 바라보는 눈으로

금강산 사시사철

찬란한 풍광의 낮과 밤을

넋 잃고 바라보는 눈으로

우리 서로를 바라보자

내금강 아스라히 묘길상이어도 좋아라

만폭동 물소리에 묻혀

누구의 말 못 들어도 좋아라

저기 천만년의 어머니 계시었다

내금강 몇번이나 다시 올지라도

올 때마다

넋 잃고 새로 바라보는 눈으로

천선대 만물상

세존 집선봉

그 어느 천길 벼랑이어도 좋아라

거기 무궁토록 사나이의 여인과

사나이 계시었다

아흐 헛디디어

저 아래 구름 속으로 빠져버려도

차라리 좋아라 얼씨구 좋아라

그토록 금강산을 바라보는 눈으로

우리 서로를 바라보자

그동안 갈라졌던 것 흩어진 것

모조리 작파하고

그동안 무지무지하게

아까운 나날들 허사로 보낸

내것이 아닌

미움이던 것

훨훨 날려 버리고

이제는 하늘의 선녀로 내려와

실한 나무꾼 만나

서로 익어가는 사랑의 눈으로

우리 서로를 바라보자

금강산 아니어도 좋아라

삼천리 강산

어느 산이어도 좋아라

그 아침 산들을

그 저녁 산들을

이윽히 바라보는 눈으로

우리 서로를 바라보자

아 금강산 1만2천봉

- 1998년 7월 14일 내.외금강을 떠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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