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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 자의 땀이 마르기 전에 일삯을 주어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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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호 31면

1992년부터 한국종교협의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행래 원로 이맘은 종교 간 대화에도 헌신하고 있다. 그는 “모든 종교가 자유와 사랑, 공동선을 추구하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신동연 기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슬람=전쟁=테러”라는 왜곡된 등식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슬람 경전인 성 쿠란(코란)을 번역한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최영길 교수는 ‘한국교과서에 왜곡 소개된 이슬람 실태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대표적인 문제는 지하드를 성전(聖戰)으로만 이해하는 것이다. 지하드는 무슬림이 이슬람을 위해 벌이는 모든 종류의 노력을 의미한다. 이슬람의 사도인 무함마드는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지하드다”라고 이해했다. “제일 훌륭한 지하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무함마드는 이렇게 답하기도 했다. “독재자 앞에서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무함마드는 또한 사회 개혁과 문화창달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는 말했다. “일한 자의 땀이 마르기 전에 그에게 일삯을 주라.” “학자의 잉크가 순교자의 피보다 신성하다.”

영혼의 리더<23> 한국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이행래 원로 이맘

지하드는 ‘전쟁’이 아니라 ‘노력’
우리나라와 이슬람의 교류는 신라·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신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만주 이주민 중에 이슬람 신자가 나오기도 했다. 터키군의 한국전쟁 참전이 우리나라에서 이슬람이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국 이슬람의 최고 지도자는 서울중앙성원의 술래이만 이행래(72·사진) 원로 이맘(예배집전자)이다. 그는 1991년 제4대 이맘으로 추대돼 줄곧 한국 이슬람을 대표하고 있다. 59년 동국대 국문과에 다니고 있던 그는 친구로부터 “이슬람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 사뭇 다르더라”라는 말을 듣고 이슬람을 접하기 시작했다. 61년에 입교한 그는 62년 말레이시아 클랑 무슬림대학에서 단기반 과정을 수료하고 62년 한국이슬람교협회 선교국 부국장에 위임되면서 이슬람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행래 원로 이맘은 2007년 8월 아프가니스탄 접경에 있는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에서 피랍된 샘물교회 봉사단의 구명 활동을 했다. 탈레반 지도부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과로한 이 원로 이맘은 귀국 후 뇌출혈로 입원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한남동에 있는 서울중앙성원에서 이행래 원로 이맘을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쿠란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알라를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옮겼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알라를 사용합니다. 우리말로는 창조주가 유일(oneness)하시다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을 씁니다.”

-국내 이슬람 신도 수는 얼마나 됩니까.
“외국인과 내국인을 합쳐 약 12만에서 13만 명 정도 됩니다. 내국인은 3만5000명에서 4만 명입니다.”

-내국인은 어떤 경로로 무슬림이 됩니까.
“아랍어과 등 관련 학과 학생, 아랍이나 이슬람 국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일반인 등 다양합니다. 이슬람을 살펴보고 실천의 종교라는 점이 맘에 들어 신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슬람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라 착실하게 신앙 생활을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올바른 삶을 영위하면 자연히 구원을 받게 됩니다. 살아있는 동안의 선행이 무거우면 천국, 악행이 무거우면 지옥으로 갑니다.”

하나님은 결과가 아니라 의도로 판단
-무조건 선행만 하면 됩니까.
“하나님이 제시하신 진리의 길에 입각한 선행인지 아닌지가 중요합니다. 쿠란은 ‘모든 행위는 의도에 달려 있느니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과는 보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결과가 아니라 순수한 의도가 있었는지에 따라 보상하십니다. 대가를 바라는 것은 진정한 선행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슬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이 천사들의 안내를 받아 알바르자크의 세계로 간다고 합니다. 알바르자크는 장소가 아니라 시간적인 개념입니다. 심판일이 되면 부활을 해서 영육이 하나가 됩니다. 그때까지 영은 알바르자크에서 ‘묘(墓) 생활’을 합니다. 악한 일을 많이 한 사람들은 지옥과는 다르지만 지옥에 버금가는 상황에서 참담한 장면들을 보고 고통을 느낍니다. 반대로 선행을 많이 하고 올바르게 산 사람은 천국과 같은 안락한 영상을 보게 됩니다.”

-이슬람에서는 지옥에 간 사람도 궁극적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슬림인 경우에는 구제가 됩니다. 생전에 하나님 믿기를 거부하면 구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슬람에서는 죗값을 반드시 치른다고 봅니다. 지옥에 간 사람들은 지옥에서 벌을 받고 난 다음 천국 가는 길이 열립니다.”

- 이슬람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이 초대 교권 계승자인 아부 바크르에게 하나님의 본체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아부 바크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본체를 알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체가 이해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인간의 질문에는 한계가 있으며 아무리 설명해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나님의 모습대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합니다. 이슬람에서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창조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본성은 다르다는 거지요. 물론 사랑, 평화 등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견줄 수 없는 하나님의 본성이 있습니다.”

-이슬람에서도 최후의 심판을 위해 예수가 재림한다고 돼 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가 재림합니다. 이슬람에서는 선지자(prophet)들과 사도(messen -ger)들이 있습니다.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마지막 선지자이자 사도입니다. 가장 위대하다는 게 아닙니다. 쿠란에는 아담, 아브라함, 모세, 예수, 무함마드 등 25분의 선지자가 나옵니다. 알려지지 않은 선지자들까지 포함하면 모두 12만4000명의 선지자가 있다고도 합니다. 이슬람은 철저하고 순수한 유일신 신앙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아무리 훌륭해도 신격화할 수 없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슬람과 관련해 남녀 평등 문제가 제기되기도 합니다.
“성 쿠란에서 남녀의 권리나 의무는 동일합니다. 신체적으로 다르고 직업상 분업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남녀는 평등합니다. 남녀 관계는 주종 관계가 아닙니다. 남녀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는 만민이 평등합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이슬람은 평화, 평등, 형제애의 종교입니다.”

-이슬람은 기적을 어떻게 봅니까.
“이슬람에서 가장 중시하는 기적은 성 쿠란입니다. 성 쿠란을 모두 암기한 분들은 ‘하피스’라는 칭호로 불립니다. 그런 분들이 세계적으로 몇 백만 명이 됩니다. 성 쿠란만큼 많은 사람들이 읽고 외우는 책이 없습니다. 그게 바로 가장 중요한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식구끼리 싸울 수 없어
-국내 이슬람 선교활동은 어떻습니까.
“이슬람에서 선교는 무슬림 개개인이 신앙인으로서 참다운 모범을 보여 다른 사람들이 접근해 오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와 이슬람은 어떻게 지내야 합니까.
“우리는 모두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인들끼리 싸우면 비신앙인들이 신앙인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종교는 달라도 사실은 ‘기복신앙’이라는 종교가 있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슬람은 기복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기원(祈願)은 할 수 있습니다. 기복과 기원의 경계가 애매할 수 있지만 이슬람 신앙 생활을 하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외부에서 종교가 들어온 경우 토착화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슬람은 토착화할 수 없습니다. 이슬람에서는 원리·근원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이 나서서 ‘아브라함의 종교’인 유대교·기독교·이슬람 간의 대화를 시작했으며 최근 미국과 이슬람의 화해를 호소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카이로 연설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한국 무슬림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까.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도 주시하고 있습니다.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 대한 국내 무슬림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이런 움직임이 자꾸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와 나를 가를 수 없습니다. 인류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식구끼리 싸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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