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어딘가 있다는 생각만으로 웃을 수 있는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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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호 05면

“가족은 중요한 거다. 보지 못해도 어딘가 있다고 생각하면 웃을 수 있다.”
자폐증 형이 동생에게 던진 말이다. 그 메시지를 기다렸던 관객들. 적극적으로, 자발적으로 그 감동에 빠져든다. 그만큼 가족애에 목마른 세태다.

연극 ‘레인맨’, 서울 대학로 SM아트홀, 8월 2일까지, 문의 02-2051-3307

지난 4월 24일부터 서울 대학로 SM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연극 ‘레인맨’의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당초 5월 31일 종연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8월 2일까지 연장 공연을 결정한 것도 관객의 호응 덕이다. 현재 객석 점유율은 60∼70%에 달한다.

연극 ‘레인맨’의 구성은 영화 ‘레인맨’ 그대로다. 인터넷 주식 트레이더 찰리 바비트는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고향 신시내티로 간다. 긴 세월 연락을 끊고 지냈던 아버지였다. 그는 아버지의 유산 300만 달러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친형 레이몬드에게 남겨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주식투자 실패로 파산 직전에 몰린 찰리는 아버지의 유산을 수중에 넣기 위해 자폐증을 앓고 있는 레이몬드를 데리고 LA집으로 향한다.

영화에서 더스틴 호프먼이 연기했던 레이몬드 역은 뮤지컬 배우 김성기(사진 왼쪽)가 맡았다. ‘미녀는 괴로워’의 이공학 박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일라이자 아버지 등 코믹 캐릭터를 주로 맡았던 그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수염까지 완전히 밀어버리고 나선 역할이다. 삐딱한 고개, 불안한 눈빛, 소심한 걸음걸이 등 레이몬드 역에 완벽하게 적응한 그의 연기 변신이 놀랍다. 원주율과 전화번호부까지 외워야 하는 엄청난 대사 부담도 인상적으로 소화해 냈다.

이기적인 동생 찰리 역은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천재 마에스트로 ‘정명환’ 역으로 분했던 배우 김영민(사진 오른쪽)이 연기했다.

형제의 불안한 동행은 곧 소통과 치유의 현장이 된다. 특히 “아버지는 나를 미워했다”고 기억하는 찰리는 형 덕분에 뒤틀린 마음을 풀 수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외로웠던 유년시절과 화해하는 순간이다.

가슴 찡한 무대이긴 하지만, 61회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감독상ㆍ각본상ㆍ남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원작 영화와 단순 비교한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공간적ㆍ시간적 제약 때문에 영화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던 카지노 장면도 담아내지 못했다. 대신 집어넣은 ‘공놀이 장면’이 영 어색하고 마땅찮을 수도 있을 터다. 또 회전 무대가 돌아갈 때마다 들리는 소음이 귀에 거슬리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보다 좋으냐” “영화만큼 좋으냐”는 언제나 우문(愚問)이다. 혹 배우들에게 방해될까, 숨소리도 조심하며 깊이 몰입해 보는 경험 자체가 연극의 맛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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