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제헌동지회 김인식 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48년 5월 31일 제헌국회를 개원하고 7월 17일 헌법을 공포했을 땐 마치 황무지에 물을 대 농사를 지은 기분이었습니다.

제헌 작업에 비지땀을 흘렸던 2백9명의 동료의원들은 한결같이 세계 최고의 헌법을 만들었다는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어요. "

제헌 50주년을 맞은 제헌의원동지회 김인식 (金仁湜.86) 회장. 그는 "민주국가의 토대인 제헌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외국의 민주헌법을 비교.분석하며 격론을 벌이던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고 말한다.

"마땅한 사무실이 없어 여관방을 잡아 기초 법안을 연구하기도 했어요. 그땐 민주주의의 초석을 마련하고 국민들의 배고픔을 덜어주자는 구국.봉사의 일념밖에 없었습니다. "

金회장은 "2년간의 임기동안 본회의 개의 일수가 4백일이나 됐고 의원들은 3일에 한번 꼴로 법안심사를 했다" 고 회상한다.

여야의원 가릴 것 없이 모두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이 앞서 서로 먼저 등원 (登院) 하려 애썼고 발언신청도 줄을 이었다.

그러나 50년 세월이 지난 지금, 金회장은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후배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안타까워 한다.

게다가 국가위기 상황에서도 원구성도 못하는 현실을 보니 후배들을 잘못 지도했다는 회한이 든다고 말한다.

"국사 (國事) 를 돌보는데 여소야대 (與小野大)가 문제가 돼서는 안됩니다.

시류에만 끌려다니며 대국민 봉사정신을 망각하고 있어요. 정신적.도덕적 재무장이 필요합니다. " 金회장은 "제헌의원중 5명만 살아 있어 몇년 후면 당시 얘기를 들려줄 사람도 없다" 며 "제헌국회 기념회관을 건립해 제헌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고 말했다.

양영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