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나서 자국 음식 홍보 말고 현지 민간의 입 빌려 소문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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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자국 음식 세계화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민간의 노력과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으로 태국 음식은 정쟁이나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꾸준히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이를 이끌고 있는 유타삭 수파손 태국식품연구소장을 만나 한식 세계화에 필요한 조언을 들어 봤다. 그는 “맛있는 한식이 왜 여태 세계화가 안 됐는지 의문”이라며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를 홍보에 이용해 보라고 권했다. 예로 ‘원더걸스와 함께하는 한식 홍보 행사’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기 굽는 냄새가 옷에 배어 한식을 꺼리는 사람이 많다는 따끔한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음식은 세계화와 국가 브랜드 홍보, 그리고 관광 진흥의 훌륭한 도구입니다. 태국은 음식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국가 이미지를 전 세계에 퍼뜨렸어요. 그 경험과 전략을 한국과 나누고 싶습니다.”

태국 국립식품연구소의 유타삭 수파손(43·사진) 소장의 말이다. 태국 투자청 서울사무소 개소식을 기념해 최근 방한한 그는 태국음식의 세계화를 지휘하고 있다.

그는 특히 자국 음식의 세계화가 문화의 세계화를 이끄는 견인차 노릇을 한다고 강조했다. “2004년 태국음식 세계화의 슬로건을 정하면서 ‘태국다움(Thai-ness)’이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았습니다. 태국음식을 널리 알려 외국인들이 우리의 똠양꿍(향신료를 찧어 넣고 새우를 으깨 넣은 태국식 매운 국물 요리)을 먹게 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태국 문화와 국가 브랜드도 함께 알리자는 겁니다.”

그는 신중한 접근법을 강조했다. “‘정부에서 나서 우리 음식이 훌륭하니 먹어보라’고 하는 식의 접근은 금물입니다. 민간, 특히 남의 입을 빌려서 될 수 있으면 과학적 방법으로 자국 음식의 우수성을 홍보해야 합니다. 현지의 유명 인사와 손을 잡는 것도 방법이지요.”

그는 일본에서의 사례를 들었다. “오사카 지역의 한 대학 연구소에서 똠양꿍에 든 성분이 심장에 좋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어요. 그 뒤 많은 사람이 똠양꿍을 찾기 시작했고, 한 설문조사에서 ‘일본인이 좋아하는 외국 음식 3위’에 올랐습니다.”

미국 사례도 고무적이다. “미국의 한 음식 잡지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뭐라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조사를 했더니 햄버거와 함께 태국의 볶음 국수인 ‘팟타이’가 선정됐다고 하더군요. 여러 인종의 용광로인 미국에서 태국음식이 그만큼 친숙해졌다는 뜻이지요. 현지화에 성공한 것 같아 흐뭇했습니다.”

태국음식의 세계화 성공은 통계가 잘 말해준다. 2004년까지만 해도 해외의 태국음식점은 4000여 개에 불과했지만, 현재 그 숫자는 1만3000개에 이른다. 미국에는 등록된 것만 4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유타삭 소장은 “세계인들을 조금씩, 효과적으로 교육한 것이 성공 비결의 하나”라고 답했다. “태국음식은 특유의 향이 강해서, 익숙해져야 맛있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한국음식도 마찬가지고요. 어떤 분은 이 점을 세계화의 방해 요인으로 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로 봐요. 일단 맛을 들이면 중독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원래 맛을 유지하면서 세계인의 식탁에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운맛의 정도는 고객의 입맛에 따라 조절했지만요.” 해외에 파견할 태국음식 요리사들을 전략적으로 양성하고, 해외에 태국음식점을 내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도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유타삭 소장이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진출 국가별로 서로 다른 접근법이다. “태국 문화를 어느 정도 아는 나라에선 본연의 맛을 선보이고, 익숙하지 않은 나라에선 현지화를 시도했지요. 한 나라 음식의 세계화라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지만 민간의 효율적인 접근과 정부의 적절한 지원이 뒷받침되면 절대 불가능한 목표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는 한식을 좋아해 방콕에서 아들과 함께 불고기를 먹으러 외식을 하기도 하고, 삼계탕도 즐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토록 맛있는 한식이 왜 여태 세계화가 안 됐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식 홍보에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를 이용해 보라고 권했다. “지금 방콕에선 ‘원더걸스’를 비롯한 한국 가수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어요. 이걸 이용해 ‘음식 콘서트’를 기획하면 어떨까요? 원더걸스의 공연도 보고 한식도 맛보고, 일거양득일 겁니다.”

그러면서 음식 냄새 처리를 비롯한 서비스의 혁신을 강조했다. “불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하면 내 아들은 좋아하는데 처는 꺼려요. 냄새가 옷에 배기 때문이죠. 특급호텔엔 비슷한 이유로 한식당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특수 그릇을 개발하는 것도 방법일 겁니다.”

전수진 기자

◆유타삭 수파손 소장=일본 문부과학성 장학생으로 게이오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1996년부터 투자청에서 근무하다 태국음식 세계화 정책이 본격화할 무렵인 2004년 산업부 산하의 식품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태국음식의 우수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등의 방법으로 세계화에 기여했으며, 2007년에 소장에 올랐다. 태국식품연구소는 96년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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